2026년 7월 5일 연중 제 14 주일
‘멍에’는 소나 말 목덜미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기다. 소 입장에서는 아침마다 목에 걸리는 이 막대기가 참
귀찮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멍에가 있다. 살면서 만나는 ‘귀찮은 그 무엇’, 때려치우고 싶지만
차마 던져버릴 수 없는 인생의 필수 짐들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소도 멍에가 있어야 쟁기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듯, 우리도 그 지긋지긋한 멍에 덕분에 주님 손에 이끌려 인생길을 이탈하지 않고 걸어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솔직히, 멍에가 편할
수는 없다. 가벼운 멍에라는 건 ‘따뜻한 냉수’ 같은 모순 아닐까? 멍에는 본질적으로 무겁고 귀찮은
것이지만, 가볍게 되기까지는 숱하게 넘어지고, “나 안 해!” 하고 드러누웠다가, 결국 슬그머니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끝없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인생 쓴맛, 단맛, 매운맛까지 다 보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깨닫는다. ‘아, 그 아팠던 고통들이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은총이었다는
사실을
오늘 제1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는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메시아를 예고한다. 그분이 오시면
전쟁은 사라지고,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되며, 진정한 평화가 세상 끝까지 퍼져나갈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위대한 일을 하실 분이라면 화려한 왕관을 쓰고 군대를 이끄는 강력한 군주일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메시아의 모습은 정반대다. 그분은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지만, 아주
겸손하게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이시다.
우리말로 ‘겸손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아니(Anaw)’는 본래 핍박받는, 가난한
이(Anawim)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진정한 힘을 가지신 분이 가장 낮고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는 뜻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초라한 어린 나귀를 타셨고, 결국 가장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온유함’과
‘겸손함’은 바로 이처럼 자기를 완전히 비워내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지치고 힘든 우리에게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며 당신에게 와서 쉬라고
하신다. 이 말씀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도 하느님을 사랑하긴 했지만 규칙과 규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본질을 잃어버렸다. 예를 들어
‘안식일 규정’을 보면 안식일에는 불도 못 켜고, 바느질도 못 하며, 빵도 구울 수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이 엄격한 규정들은 삶을 조여 오는 무거운 '멍에'이자 고통이었다.
하느님은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라, 감시하고 처벌하는 무서운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숨 막히는 종교적 형식주의를 단칼에 깨뜨리셨다. 예수님은 까다로운 문자 그대로의 규칙보다
‘사랑과 자비’라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일깨워 주셨다. 까다로운 형식을 지키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너희를 사랑하신다.”는 본래의 복음을 돌려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다.
숨만 쉬어도 숨이 차는 것처럼, 원래 모든 일은 다 힘이 든다. 그런데 똑같이 에너지를 쓰는데도, ‘나쁜
일’과 ‘좋은 일’은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안다. 그런데 이 나쁜 짓은 중독성이
강해서 한 번 하면 끊기가 쉽지 않다. 게임, 밤샘 폭식, 남 뒷 담화 … 이런 것들은 할 때는 좋지만, 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하고,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며, 결국 내 영혼과 몸을 방전시켜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된다. 그러나 좋은 일,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일도 몸은 고되지만, 신기하게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오르는 뿌듯함이 있다. 이게 바로 ‘보람’이라는 중독이다. 몸은 지쳤는데 정신은
맑게 되는 마법 같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우리 신앙인들은 손해보는 삶을 산다고 할 것이다. 주말에 늦잠 자는
대신 성당에 가고, 내 몫을 먼저 챙기기는커녕 남에게 양보하고, 화가 나도 예수님 생각하며 한 번 더
참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세상 친구들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바보 같은 친구야,
정신 차려, 세상은 실전이야!”하지만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세상이 보기엔 대책 없는 ‘철부지’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에겐 우리 마음속에 계신 성령이 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계시면, 비록 세상 기준으로는
조금 손해 보고 낮아졌을지라도, 내 마음속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채워진다. 내가 세상을 다
안다고 잘난 척하는 지혜로운 자의 자만심을 내려놓고, 그저 엄마 아빠 손잡고 따라가는 철부지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손을 잡는 우리였으면 한다. 세상이 주는 짜릿함은 금방 끝 나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유통기한이 없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 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