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2일 연중 제 15 주일Fr. 김두진(바오로)강론

7 12일 연중 제 15 주일

어릴 적 툭하면 사고를 치던 개구쟁이 시절, 어머니께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역시얘야, 제발 말 좀 들어라!”였다. 그 시절에는 그 소리가 왜 그리도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철이 들고 나니, 문득문득그때 어머니 말씀을 좀 잘 들을 걸하는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가슴 한구석이 찔렸던 이유도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하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성당에 다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눈을 감고도 외울 만큼 익숙한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당시 이스라엘의 독특한 농사법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농부들은 먼저 밭을 정성껏 갈아엎은 뒤에 씨를 뿌리지만,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먼저 씨를 사방에 흩뿌려 놓은 다음에 밭을 갈았다. 그러다 보니 씨앗이 엉뚱한 데로 날아갔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딱딱한길가에도 떨어지고, 흙이 얕아서 속이 훤히 보이는돌밭에도 떨어지고, 거친 잡초가 무성한가시덤불속에도 떨어졌다. 요즘의 현대적인 경영 마인드나 효율성의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빵점짜리농사법이다. ‘저렇게 아까운 씨앗을 길바닥에 버리면서까지 왜 뿌릴까?’ 하지만 복음 속 농부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좋은 땅에 씨 뿌리고 있음을 확신한다.

 

예수님은 이 씨앗이 바로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시고 네 가지 땅은 우리의 마음이라고 설명해 주신다. 길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마음의 문이 닫혀 있어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 돌밭: 처음에는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조금만 힘들거나 손해를 보면 금방 포기하는 사람. 가시덤불: 세상 걱정과 돈 욕심, 스트레스 때문에 말씀이 자랄 틈이 없는 사람. 좋은 땅: 말씀을 귀담아듣고, 마음 깊이 새겨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 좋은 땅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서른 배, 예순 배, 무려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니 실로 놀랍다.

 

우리가 이 비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낭비된 씨앗들에 대한실패가 아니라, 결국 찾아낼희망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져 버려지는 씨앗이 훨씬 더 많아 보이지만 예수님은 낙심하지 않으신다. 좋은 땅이 가진 그 위대한 잠재력을 믿으시기 때문이다.

 

성서학자들은 이 비유가 당시 예수님이 겪고 계셨던 쓸쓸한 처지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기적을 보고 가르침을 들으려 수천 명이 구름처럼 몰려왔지만, 시간이 흐르고 십자가의 길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하나둘 곁을 떠났다. 결국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 곁에 남은 건 고작 열두 제자와 몇몇 여인들뿐이었다. 세상의 눈, 데이터의 눈으로 보면 명백한실패한 비즈니스였다. 누군가는예수님, 이제 그만 접으시죠, 사람들이 더 이상 따르지 않습니다.”라고 조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눈앞의 쓸쓸한 실패보다, 겨우 몇 안 되는 그좋은 땅이 앞으로 전 세계에 맺게 될 무수한 열매들을 미리 바라보셨기 때문이다. 십자가라는 최악의 실패 속에서부활이라는 최고의 승리를 이미 보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당 공동체를 보며 걱정 섞인 목소리가 많다. 신자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고, 성당에는 젊은이들보다 어르신들의 모습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우리 본당의 미래가 어둡다며 한숨을 쉰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 길가도 있고 돌밭도 있고 가시덤불도 널려 있지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좋은 땅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좋은 땅은 우리의 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을 수도 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위로의 진리는 우리는 열매를 만들어내는생산자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씨를 뿌리는농부의 손일 뿐이라는 점이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유일한 사명은 지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내 눈앞에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 계속해서 따뜻한 복음의 씨앗을 건네는 것, 계속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리하여 결국 끝까지희망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으로 뿌린 작은 씨앗 하나도 결코 허투루 버리지 않으신다.

 

다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잔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말 좀 들어라.” 오늘 예수님께서도 성체 성사 안에서, 그리고 내 곁의 이웃들을 통해 우리에게 속삭이신다. “얘야, 내 말을 좀 들어주련? 그 귀한 말씀을 네 마음에 소중히 받아들여서, 네가 나의 좋은 땅이 되어주지 않겠니?” 우리가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받아들이려 애쓴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라는 밭을 반드시좋은 땅으로 일구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삶의 자리에서 서른 배, 예순 배, 또 백 배의 아름다운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우리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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