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계절 )
이곳
시카고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봄맞이를 하고 그리고는 또 여름을 나고 낙엽을 떨구는 가을나뭇가지를
애처러워 하는 사이 어느 새 하얀 눈이 내려와 그 마른 가지를 감싸 위로하는 겨울에 나의 몸을 움추려야
했었을까?
늘 그래야 했던 그 올겨울이 길을 잃었나보다.
춘삼월에 반팔 옷을 입고 그래도 땀을 이마에서 닦아냈던 기억이 없는데 이 3 월에 그렇게 했다.
무슨 일일까?
누가 시카고의 겨울을 길을 잃고 헤메도록 이끌었을까?
하느님?
그 계절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이 무슨 연유가 있어 그러실려구.
우리가 그랬지.
우리가 그랬어 !
잔머리 쓴다하고, 과학을 배웠다며 온갖 공해물질 만들어 길에다 내다버려 그걸 보고 질겁을 한
그 겨울이 길을 잃고 달아났을 게야.
돈벌이에 뒤집힌 장사치의 양심들이 기름을 바닷가에 쏟아놓고 허둥거리는 동안 놀란 바다가 요동을 치고
그 안의 고기들은 ” 살려달라 ” 아우성 쳐 댔겠지.
기름값이 오르거나 말거나 그래도 ” 나, 내통령 한번만 더 할래. 뽑아 줘. “
양심에 먹칠을 한 정치꾼들이 백성들 살림은 외면하고 손을 흔들어대는 사이에 겨울은 길을 잃어버렸을 게야.
엄마뱃속에서,
세상에 나가 엄마, 아빠와 살고싶다고 발버둥치는 핏덩이를 갈구리로 긁어내는 어른들의 무너진 양심이
하느님의 얼굴을 외면한 사이에 그 겨울은 아마도 길을 잃고 헤맷을 게야.
좀 춥고 괴롭긴 하지만 그래도 참아볼테니
시카고의 겨울아, 내년엔 다시 때 맞춰 찾아주렴.
( 잃어바린 보물들 )
본당의 Respect Life 에서 교우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되새기며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귀한 자료들을 교회의 지원으로 주문했었다.
그것이 도착되어 정리할 생각으로 친교실 탁자위에 잠시 놓아누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발신자, 수신자가 쓰여진 Box에 담겨져 있는데 박스는 비어있고 알맹이만 없어졌다.
그 물건들이 스스로 길을 잃어 걸어나갈 수는 없을 터인데 그런데 나가 없어졌다.
성당의 친교실인데 누가 곡이라도 해야 할 참 희한한 일 아닌가?
성전은 천사만이 들어오는 곳이 아닌데 그걸 깜빡 잊은 나 자신의 무심함을 탓해야겠지.
누군가 호기심으로 집에가서 한 번 내용을 보고싶은 마음에 옮겨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추천할만한 일은 아니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경우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으면 다른 많은 교우들도 차례대로 나누었으면 하는 자료들이니
아무도 안보는 사이에 슬그머니 그자리에 다시 놓아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 될까.
자신과 하느님밖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 될까.
다시 갖다놓아도, 안갖다놓아도, 아니면 버려도
그래도 자신과 하느님밖에는 아무도 모를테니까.
혹시
만에 하나라도 그 박스에 쓰인 수신자 이름에 마음이 쓰여서 그자가 꼴보기 싫어서 치워버리고 싶어 일시적으로
그런 일을 하였으면 그래도 슬그머니 갖다놓는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왜냐하면
그 귀한 물건들은 그 수신자 개인의 것이 아니고 우리 교회의 자산이니까.
말하자면 실소유주는 하느님이시니까.
지금 우리는 많은 이들이 마음에서 양심을 따로 떼어놓고 사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 싶다.
그건 비단 (그이) 만의 일도 아니고, (너)만도 아니고 (나)도 포함된 보편적인 세상의 모습으로 변모해가고
있어 보인다.
잃어버린 양심, 잃어버린 세대.
서글픈 현상이다.
나같은 이마저도 서글펐다면 우리의 하느님은 얼마나 서글프실까?
이제라도 우리는 찾으러 가자.
찾아 나서자.
잃어버린 마음, 잃어버린 길, 잃어버린 고향, 일허버린 계절들을 찾아가자.
( 잃어버린 동무들)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때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동무
지금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내 맘에 색동옷 입혀 웃고 울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없던 때를 찾아갈까 찾아 가.
(이은상 요)
(잃어버린 고향 )
내가 태어난 곳은
황해도 사리원.
왜, 그리고 무얼 하러 어디로 가는 건지 알지도 못할 나이에
할머니한테 손목을 잡혀서 태어나고 자라던 집을 떠났었다.
후일에 듣자니
공산당이 무섭고 싫어서 희망을 찾아서 남쪽으로 넘어 오게 되었다고 했다.
잡히면 옥에 갇히게되고 고통을 받게되니 낮엔 어디엔가 숨었다가 밤을 이용해 이동해야만 했는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린 것이지만 배가 고파도 물을 마시고 싶어도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느라 참아야 했다.
일당주고 산 안내원을 따라 얕은 곳을 골라 임진강을 건너는데 무릎까지 차는 갯펄에 빠졌다가 발을 빼니
먼길 간다고 새로 사 신꼈던 내 신발의 한쪽이 묻히고 맨발만 올라왔다.
내탓이 아닌 걸 아시는 할머니가 딱한 표정을 했지만 그 때부터 맨발로 자갈밭을 걸었다.
그 탓이였는지 내 발모양은 내가 봐도 참 안생겼다. 무슨 발이 그리 요상하게 생겼는지.. 쯧쯧.
몸도 숨겨야 하는 판국에 어딜 가서 또 신발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넘어 찾은 희망의 땅은 얼마 안있어 공산당이 탱크를 몰고 뒤쫒아 내려와 피난살이로..
공주, 청주, 대구 그리고 부산 떠돌다가 시카고에까지 와 살고 있으니 고달픈 삶, 여정이라 해야할지.
기억에 집근처와 성당, 학교가 어렴풋 남아있을 뿐인 그곳도 태어난 곳이라 그런지
언제나 그리운 고향으로 남아있다.
명절때면
그리움이 좀 더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다.
돈 있고 시간이 있대도 가고싶을 때 갈 수도 없는 땅이어서 그럴테지.
성당에서 이웃교우들이 다녀온 고향얘기 꽃을 피우면 나는 은근히 시샘을 피우게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고향은 어디일까? 싶다.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생각이다.
아니 !
거슬러 올라가 찾아보면 나의 진정한 고향은 나에게 영혼을 심어주신 그 님이 거처하시는
그곳, 하느님나라가 바로 나의 고향이어야 마땅할 것 같다.
그러나 그곳도 역시 내가 언제고 가고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은 아닐 것이다.
주인께서 문을 열어 문을 두드리는 날 보시고는
” 난 도무지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하시면 문앞까지 갔다가도 쫒겨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부끄러운 삶을 지울 수 있도록 올곧게 잘 살고 그 고향의 우물가에 있을
샘명수를 마실 수 있도록 고향을 지향하는 삶을 일상에서 찾기로 작정하여 노력해야지.
What el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