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만남

( 우리는 싸우자)

 

( 이 글을 쓰는 이의 본의도가 오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가 잘못되었다거나, 기도문의 내용이 틀렸다거나, 그러니 그 기도를 하지 말아야한다거나 

  그런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장하려는 의도는 바로 그 기도문처럼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일미사 때면 다 함께 (일치)를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고 있다.

 

” 간절히 청하오니.. 성령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하소서. 아멘. “

 

우리가 기도로서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 필요함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가 이렇게 간절하게도 일치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뒤집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의 개인적 문제에 한하기를 바라지만 그 기도를 바칠 때면 왠지 자꾸만 마음 한켠에 꼬챙이같이 

걸려 나오는 것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일까?

나의 마음이 곱지못하고 비뚤어져서 그럴까 싶었지만 그럴만한 이유도 있을 성싶다.

 

예수님은 첫 신앙공동체를 세우시면서 부터 우리가 하나이기를 바라셨다.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셨다.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마태16,18)

 

” 아버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요한17,23)

 

우리는 주님께 간절히 청하듯이 죽기를 한하여 싸워야만 한다.

이웃과 싸우지 말고 (나)는 (나)와 싸워야만 한다.

내안에 가득 차있을지도 모를 교만, 위선, 나태들과 싸워 그것들을 물리쳐야만 한다.

生卽死, 死卽生 의 각오로 싸워야만 한다.

 

그 일을 할 뜻이 없거나 있어도 실행하지 않으면서 ” 주여, 이루어지게 하소서. ” 

입으로 기도문을 되풀이 외우고 있다면 그것은 자칫 다만 (공염불)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 엄청난 일을 단번에 다 실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주일에 한가지씩이면 한해에 무려 50 가지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이 있겠는가.

카인은 친동생 혈육도 죽였고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돈을 받고 장삿꾼에게 팔았었다.

 

우리가 어찌 말처럼 그리 쉽게 성인처럼 살겠는가.

불가능하게 느껴질만큼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하느님은 우리에게 하라고 명하시진 않으셨을 것이다.

(나) 가 죽을 것같은 각오로 이웃사랑을 실행하라고 하셨을 게다.   

 

우리가 다음 주일미사에서 만나 함께 기도를 올릴 때까지 각자 세상속에 살고 있는동안 다만 한가지, 작은 하나 씩이라도

고쳐나가는 노력을 하고나서 만나 기도를 간절히 올리게 된다면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은 우리의 갸륵한 정성을 보시고 또

행하려는 그 정성을 예쁘게 보시고 우리를 거들어 주실 것이란 희망을 갖게된다.

 

희망은 곧 생명이다. 

희망은 곧 빛이다.

우리가 빛을 보았다면 사는 길을 보았을 것이다.

 

 

( 우리의 만남 )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15,16)

 

이렇게 주님이 친히 뽑으신 소중한 만남의 광장인 신앙공동체라고 하지만 

우리는 태어난 곳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양도 각각 다른데 어찌 그리 손쉽게 (주님의 명령)이 얼마나 중하고

또 엄격한줄을 알면서도 쉽게 이룰 수 있을까 ?

 

때론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또 때론 미워지고 그런 마음이 우리의 약함일 것이다.

마치 밀물과 썰물의 드나듬과 같은 것이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 처음의 파도는 해변에 다가왔다가 

입맞춤을 남기고 바다로 돌아가지요. 그리고 바다는 그것을 되풀이해요.

당신에 대한 나의 그리움도 파도와 비슷해요…. ( Carl Sigman 의 글중에서)

 

우리의 만남을 생각해 본다.

 

주일미사에서 한께 앉아 주님을 찬양했었던 그이,

나의 정성으로 봉헌하고 돌아와 앉아 봉헌성가를 함께 부르던 그이,

” 평화를 빕니다. ” 하며 손을 내밀며 미소를 주었던 그이,

친교실에서 마주치면 왠지 조금은 편치않게 느껴졌던 그이

너무 반가워 와락 끌어안고 싶었던 그이

이 모든 이들이 또다시 다음 주일미사 때 함께하리란 확신을 우리는 할 수 있는걸까?

물론 기대하고 희망하며 헤어지지만 …

 

그이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갔다고 

아니면 내가 갑자기 그이들을 떠나게 되었다고 슬픈소식을 

바라지도 않는 슬픈 소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이세상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더욱 소중한 만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만난다는 일은 소중한 하느님의 축복이다 말할 것이다.

우연의 만남이 아니였기에 필연의 만남이였기에 더욱 소중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가 아침에 눈을 뜨고 살아있다는 일은 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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