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마음 = 빍은 얼굴

저는 대부분의 경우,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을 만나뵐 때 마다 그분들의 얼굴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분들이 입는 유니폼, 그 자체가 어떤 선입관을 갖게한다는 이유도 어느만큼은 타당성이 있을지 모릅니다.

 

군인이나 경찰에게서 보듯이 한 단체의 공통된 복장은 그 옷을 입는 이의 개성을 타나내기 보다는 그가 속한 단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유니폼을 입은 이가 행하는 잘하는 일은 눈에 잘 뜨이지 않더라도 조그만 잘못도 그가 속한 단체에 대한

나쁜 이미지로 오해될 소지가 있겠지요.

 

복장은 겉모습이지만 눈에는 안보이는 유니폼도 있겠지요.

우리 크리스챤의 유니폼 같은 복장 말입니다.

내가 교회에  가는 걸 나 자신만 알고 있는 게 아니고 나의 주변사람들도 알고 있게 되지요.

 

” 아유, 저사람은 교회에 다닌다면서 화장을 저렇게 짓게 하고 비싼 화려한 옷에 혼자 잘난체 교만하고  또 하는 짓은 그게 뭐람! “

 

” 저이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구 정말 하느님 믿는 사람 같애.

  언제나 겸손하구 친절하구 남 모르게 좋은 일도 참 많이 하잖아! “

 

주변에서 날 어떻게 평하느냐 그 자체가 꼭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 평에 개의할 필요도 없지만 나의 삶이 어떤가는 겉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수도자들이 늘 주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엮어가는 동안에 겉모습도 절로 그렇게 닮아가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었고 귀로 듣지도 못했던 그러나 그런 힘든 태어남을 하느님을 원망하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일을

오히려 보고 듣는 이들보다 아주 더 많이 했었던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 합니다.

 

” 이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져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 입니다. “

 

또 성경의 잠언도 이렇게 말해줍니다.

”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밝아지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기가 꺽인다. ” (잠언15:13)

 

그러나 현실의 삶속에서 너무나 가난해서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가기도 어렵거나 가족중에 몹시 아픈이가 곁에 있다면

어찌 마냥 기쁘고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그 어려움안에 숨겨져있을지도 모를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지혜를 구한다면 그 또한 나만의 뜻을

찾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헬렌 켈러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엄마가

나의 탯속에서 나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아기를 위해서 또는 이미 태어나 곁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에게 되도록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평화를 심머주려고 일상의 삶속에서 노력한다면 나도 미처 모르는 사이에 만나는 이웃들이,

 

” 어머나, 자매님은 뭐 좋은 일 있어 ? 혹시 연애하나 ? 왜 그렇게 얼굴이 발그레 해지고 예뻐지는 거야 ? 샘 나네. “

그렇게 말해주는 바람에 그동안의 내 삶이 어떠했는지 다 탄로(?) 나고야 말 것입니다.

 

또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의 자녀도,

곧 태어날 나의 아기도 하느님의 자녀로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이 지구촌 사회는 그만큼 밝아지지 않을까요?

 

” 하느님나라가 바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

예수께서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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