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예언서, 요엘에는 이런 말이 있지요?

 

” 이 일을 너희의 자녀들에게 일러라.

  자녀들은 또 그 자녀들에게

  그 자녀들은 또 그 다음 세대에 이르게 하여라. “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저 자신이  광장에 모여 온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져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예언자의 말씀처럼 그렇게 행하지를 못했기 때문이지요.

 

(품안의 자식) 이라고 그 아이들이 내 품안에서  자라고 있을 그 때에,

아빠가 그 아이들을 앉으라 하고 눈을 마주한 채 잘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옳은 말,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일러주면 귀를 쫑긋이 열고 담아 들을 그 어린 아이였을 때에 그렇게 잘 하지를 못했던 것을 

지금에서야 몸서리치게 뉘우침을 갖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세월동안에는 삶 그 자체가 어떤 연유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게 휘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차분히 앉을 겨를을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적인 이유를 들어댈 수 있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것은 다 구실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언제나 귀여운 아이들로 그대로 머물러 있지를 않지요.

이제 머리가 커지면 제가 어른이고 그래서 제가 어른을 오히려 가르치려들지만 않아도 다행이겠지요.

 

그래서 예언자는 ”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 ” 고 말씀하시는것이겠지요.

 

( 자녀에게… 또 그 자녀에게… 그리고 또 그 자녀에게… )

그렇게 하라는 예언자의 말씀이 마치 흐르는 강물같지 않습니까 ?

 

이렇게 강물 흐르듯이 자녀에게 이르고 가르치는 일이 마치 강의 상류에서 좋은 물을 흘려 보내면 

그 강물은 흘러흘러 내리면서 역시 좋은물을 전해주게 되겠지요.

아니면 위에서 나쁜 물을 내리면 아래서는 썩은 물, 구정물이나 받게되듯이 말입니다.

 

나의 자녀들, 후손이 훌륭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좋은 것을 물려주어야함은  그래서 당연하겠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의로움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무엇보다 (사랑)을 전해주려면,

우선 구찮고 싫어도 부모가 먼저 배워야겠죠.

모르고야 가르칠 방법이 없을테니 말입니다.

 

저는 소를 잃고나서야 외양간을 고친답시고 마치 지나간 뻐스를 세우려고 손을 흔들은 격이 되었지만

그래도 뒤늦어도 하느님 말씀을 배우려는 자세는 잘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배우는 일은 평생의 일이고 더구나 하느님말씀이야 더 말할 나위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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