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려나무, Palm tree )
성지주일에 모여왔던 모든 교우들처럼,
나도,
축성되어 거룩하게 변모한 성지를 얻어와 잊기 전에 한다고 들어서자 곧 십자고상 곁에 걸었다.
작년에도 또 그 이전에도 해 오던 일이였으므로 아주 능숙한 솜씨였다.
그렇게 하고서 의자에서 내려서다가 십자가에 여전히 못 박혀 계시는 예수님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나의 가슴은 방망이 치듯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그곳을 물러날 수도, 바로 주님을 올려다볼 수도 없어지고 그래서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예수님은,
나에게 ” 오른손을 가슴에 얹어놓고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 너, 사람아. 들어라.
지난 해에도, 그리고 그 이전에도 너는 종려나무가지를 얻어와서는 지금 처럼 여기 나의 곁에 걸었었다. “
” 예. 주님. 그렇게 했습니다. “
” 그럼 작년에 걸었던 그 가지는 지금 어디에 있더냐 ? “
” 지난 재의 수요일에 태워진 그 가지의 재를 이마위에 받아 왔나이다. “
” 그럼 그 받았던 재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 ? “
” …………. 그 재는 지워지고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주님. “
” 네가 방금 걸어논 이가지는 여기에 나와 함께 머물다가 또 그만 때 쯤이면 다시 재가 되어 너는 이마에 얹고 올 것이다. 그렇지 ?”
” 네, 주님. “
”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네가 종려가지를 여기에 얹고 다시 내려서 태워진 재를 받는 그 사이에 너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 ?
너에게 달라진 것이 있었느냐고 묻고 있는게다. “
” ………….. “
나는 주님의 물음에 무엇을 답해 드려야 할지를 몰라 차라리 그냥 고개만 떨구고 말았다.
주님은 더 이상 아무런 말씀도 더 이상 하시지 않으셨다.
궁금해진 나는 주님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예수님은 전과 똑같이 피를 흘리시며 가시관을 쓰신 고상(苦像)의 모습으로 그냥 거기에 계셨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므로서 나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나에게,
묵상할 제목과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그 묵상을 통해서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이르시는 것 같았다.
* *
그 때에도,
주님은 사람들이 길에 깔아놓은 종려나무가지 위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고 계셨었다.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셔서 하느님의 성전이 온갖 장삿꾼들이 지르는 고함소리와 돈을 주고받는 시장바닥 처럼 타락한 것을
보시고는 한탄하셨다.
나는,
오늘 거룩한 얼굴표정을 하고는 얻어온 가지를 고상에 걸어놓고 내려온 나는,
그 때의 예루살렘의 상인들과 무엇을 들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상인들 처럼 가난한 백성들에게 비싼 환전수수료를 받지 않았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았음으로
그들과는 다르고 더 선한 사람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있을까.
나는,
수난주간 내내 매 금요일을 꼭 기억하였다가 고기를 먹지도 않았고 끼니도 단 두끼만으로 지켰노라고
이웃에게 자랑하려고 두리번 거렸다고 예루살렘 상인 보다 더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정말,
나의 이마에 얹었던 재는 지금 과연 흔적도 없는 물질로 변해져 있다.
어디에 머물고 있을지도 알 수 없고 나의 가슴은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눈에 보이는 나의 육신을 돌보는 일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
아침나절에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받아보았다.
눈은 나의 손바닥에 내려 앉자마자 곧 녹아 물이되고 그 물이 된 눈은 곧 말라 없어졌다.
그렇게 쉽게 사라질 허약한 것이 하나가 되어 뭉치면 그렇게 무서운 힘이되어 작용하게 되다니.
눈사태를 만들고 세상를 꽁꽁 얼어봍게 하고.
아까 내 손안에서 녹아 물이 되었던 그 부드러운 물은 어떤가.
금방 말라 없어지던 그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하나가 되어 뭉치니 바다가 되고 성난 파도가 되고 홍수를 이루다니.
바람은 어떤가.
오늘도 어느새 싱그로운 봄바람이 된 미풍은 나들이 나온 어린이의 뺨도 간지러주는 약하고 부드러움인데
그것이 태풍이 되고 토네이도가 되어 나무를 뿌리채 뽑아 날리고 사람이 뽐내며 세워 올린 집채를 산산조각을 내다니.
이세상 살이에서 너희는 빛이 되어라 하셨을 때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을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려하기 보다는
눈으로 보며 손아귀에 잡을 수 있는 재물을 쌓아 올리는 일에만 매달려 해를 보내고
눈에 보이는 내 몸 보신시키는 일에 쫒다가 영양과다가 되었으니 이제 책을 뒤져 다이어트 하는 가장 좋은 법을 익히려
이리저리 헤멘다.
아마도 나의 영혼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함을 얻어 하늘을 나르고 싶은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육신은 영혼마저 땅에 묶어두었다.
육신의 무게 뿐이랴.
거기 더 하여 탐욕, 시기질투, 불만족, 교만, 위선들로 나를 묶으니 나의 영은 하늘을 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하느님의 자녀로 있게하기 위하여 우리의 조상님들은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목숨마저 앗겨 순교하었다.
눈으로 볼 수도 없었던 믿음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었던 하느님을 사랑했던 그 신앙 하나 때문에
바로 그 주님처럼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형틀에 달려 목숨을 내 던졌었다.
가난하고 그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나약한 이들들 구하시고자 스스로 원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은 차라리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심으로서 삼라만상 우주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지금 이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 없고 불쌍한 이들은 누구일까.
모태에서 숨 쉬며 살고 있는 어린 생명일 것이다.
그이들은 마치 예수님 처럼, 어린 양 처럼, 아무 저항도 없이 칼을 든 흰까운을 입은 악마들의 손에의해 지금도,
어제도 또 내일도 자꾸만 죽어갈 것이다.
또,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며 헤메다가 그것마저 더는 할 수 없을 때 굶으며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
그렇게 힘 없이 나약한 모습으로 죽어가지만 틀림없이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 영혼들을 품에 안아주실 것이다.
나는,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종려가지를 얻어와 걸고 또 재를 이마에 얹고 살아가는 동안에
그 가난하고 나약해서 힘 없는 이들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예수께서 종려가지를 걸러 십자가 곁으로 올라간 부끄러운 나에게 주님은 묻고 계셨다.
Pro choice 란 이름으로 무장한 새로운 시대의 로마병정들은 모태에 잉태되어 살아있는 생명을 아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어린 생명, 사람들이 어른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무슨 죄목으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걸까.
사람의 생명이 사람에 의해 선택할 CHOICE 란 말인가.
이런 나약하고 힘 없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간구하는 예수님의 대리인들.
이 두분이 함께 기도하시며 한 마음이 되시고 그래서 둘이 하나를 이루어
가난한 이, 모태의 어린 생명을 위하여 함게 일하고 계신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아까 종려가지를 걸려고 다가 간 나에게 물으신 주님의 말씀은 니도 주님의 뜻에 하나를 이루라는 명 이라 생각되었다.
주님,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