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소공동체 모임 자료

2013. 10월 소 공동체 자료

주제 복음 : 구역, 반 모임 주간에 따라 복음 선택 가능합니다.

연중 제27주일 루카 17,5-10

연중 제28주일 루카 17,11-19

연중 제29주일, 전교 주일 마태 28,16-20

연중 제30주일 루카 18,9-14

시작, 마침성가 : 270, 271 또는 성모님성가 중에서 선택 하십시오.

 

 

 

메모

 

 

 

페이지 터너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페이지 터너라고 부릅니다. 페이지 터너에게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수칙이 있는데, 연주자보다 화려한 옷을 입으면 안 되고 연주자를 건드려서도 안 되며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악보를 넘겨주어야 하고 악보를 넘길 때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됩니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 역할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은 때로는 연주자보다 그들로 인해 연주의 성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처럼 빛나는 이들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 같지만 그 성패는 작은 일에 충실한 이들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 신비라면 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생색내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모든 일에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답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살다 보면 스스로를 내세우기는 쉬워도 스스로를 낮추기는 어렵고, 알아주지 않는데 자기 일에 충실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깊은 산골에 피어있는 야생화는 화려함이 아닌 향기로 뭇 생명을 끌어들이듯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쓸모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보다 하느님 마음에 기억되기를 바라는 삶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이 계절에 누군가 그랬습니다. 우리의 삶은 바람이고 꽃이라고, 하면, 괴로움은 바람에게 전하고 기쁨은 당신에게만 전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세상에 고통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가 고통과 괴로움은 바람에게 전하고 기쁨과 미소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서 모든 사랑은 맑고 투명한 쪽빛 가을 하늘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 열 명을 고쳐 주십니다. 하지만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드린 이는 사마리아 사람,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통과 괴로움은 바람에게 전하고 기쁨만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복음 속 나머지 아홉 나병 환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매일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은 아뢰면서 기쁨과 감사를 당신께 돌리는 데는 늘 인색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은총이 아닌 것이 없었음에도 늘 당신께 감사하는 데에는 인색했던 삶이었습니다.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 우리는 추억을 만드느라 당신을 향한 발걸음이 더뎠고 당신을 생각하는 데 무심했습니다. 그 무심함을 흔들어 깨우는 계절입니다. 해서 이 계절에는 바람에 전한 당신의 고통과 괴로움에 마음을 열고 당신 제단 위에 찬미와 감사의 제물을 풍성하게 드리웠으면 합니다. 그 옛날 당신께 돌아와 감사드렸던 그 사마리아 사람처럼 말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

교황님께서 지난 5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리스도는 좋으나, 교회는 싫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가 2천년 동안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지켜 오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 스스로 솔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아마도 교회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 말씀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오로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던 이유였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면 가장 큰 사랑은 신앙입니다. 그 신앙은 우렁찬 구호가 아니라 삶 속에 뿌려진 작은 복음들로 척박한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입니다. 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복음의 전투원이 아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의 힘

기도란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혹 고통과 실패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경우를 봅니다. 응어리진 한을 품기보다 오히려 내적 평화를 간직하는 것, 그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도는 위선의 탈을 쓰고 변명하고픈 많은 이유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다른 사람들이 그래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들에 솔직해지는 과정입니다. 해서 기도는 그분과 내 삶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따뜻한 눈가에 입맞춤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지 자랑하지만, 세리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된 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세상은 자신의 죄를 등 뒤에 두거나 감추지만 신앙인은 자기 죄를 눈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럽고 버거운 짐이기는 해도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압니다. 해서 기도는 위선과 변명에 족쇄를 채우고 다만 하느님께 그대로를 펼쳐 보이는 일입니다. 그것이 부담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는 길을 달리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지난달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음을 믿나이다.”이어 사도신경 묵상입니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믿나이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 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코린15,3-8)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것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누구나 궁금해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15,20)라는 고백 안에서 해답을 얻습니다. ‘저승죽음의 세계를 지칭하는 셰올(Sheol)이라는 히브리말이나 하데스(Hades)라는 그리스말에서 온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저승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참으로 죽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승에 가심으로써 사탄의 세력, 죽음의 세력을 부활로써 쳐 이기셔서 죽음의 세계에 갇혀있던 의로운 이들에게 구원의 해방을 안겨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과 맺은 모든 관계가 끊긴 철저한 고독의 상태인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의 극한상황을 체험하시면서 인간을 그 고독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희망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죽은 이들도, 예수님 동시대의 사람들도, 예수님 이후에 죽을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요 주님이심이 확인된 사건이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겠는 약속이 실현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며, 믿음과 희망의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그 과정을 알 수는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증언은 예수님의 시신을 묻었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과학적인 증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믿는 이들에게만 그 의미가 더 풍요롭게 다가올 수 있는 신비로운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제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부활하여 나타나신 예수님을 뵙고 토마스 사도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도 제자들에게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라고 전합니다. 수많은 물고기를 잡은 체험을 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도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요한 21,7)라고 증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사도 2,36)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들은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전해들은 부활을 통해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와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부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6,4)라는 말씀처럼 부활의 삶, 변화된 삶을 통해 부활을 증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 쉽게 읽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

지난달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659~682>이어

 

 

성령을 믿나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683~747>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을 믿는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영광을 받으시는 분”(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 때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셨으며,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실 것을 예고하고 약속하실 때 그분을 파라클리토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곁으로 불려 온 분’, 보호자라는 뜻입니다. ‘파라클리토는 일반적으로 변호자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692)

 

성령은 물, 기름부음, , 구름과 빛, 인호, 안수, 손가락, 비둘기 등으로 상징됩니다. 성령강림은 이미 하느님께서 예언서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아침 이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이 약속에 따르면,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령께서 새로운 율법을 새겨주심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흩어지고 갈라진 백성들을 다시 모아 화해시키실 것입니다. 창조를 새롭게 하시며, 평화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시며 예언자들의 시대를 마감하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준비시키시어 성부께서 구원 계획에 따라 성자와 성령이 처음으로 인간들 가운데 머무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721) 동정 마리아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낳으셨으며, 성령께서는 동정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신 분이 성부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영광을 받으시기까지는 성령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몸이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이라고 가르치시며 성령을 조금씩 암시하셨습니다.”(728) 이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라고 하시며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앞으로 제자들이 박해를 당할 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영이 너희 안에서 말씀하실 것이라고 성령에 관하여 다시 언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의 때가 다다르자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하시며 성부께서 성령을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시며, 성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십니다. 신자들은 교회의 성사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르며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메모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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