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월 소 공동체 자료
주제 복음 : 구역, 반 모임 주간에 따라 복음 선택 가능합니다.
연중 제31주일 루카 19,1-10
연중 제32주일 루카 20,27-38
연중 제33주일, 평신도 주일 루카 21,5-19
그리스도 왕 대축일 루카 23,35ㄴ-43
시작, 마침성가 : 462번, 463번
신神이 사람을 측정하는 세 단계
신은 사람을 세 단계로 측정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어릴 때에 신은 그의 과오를 용서하십니다. 청년이 된 뒤에는 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측정하시지요.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신은 그가 참회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자캐오 이야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직전, ‘예리코’ 마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다른 복음서보다도 ‘회개’를 강조하는 루카 복음이지요. 이미 5장 32절에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또한 회개의 주인공으로 18장 13절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라고 회개하는 익명의 세리에 이어 ‘자캐오’라는 또 다른 세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캐오는 일반 세리가 아닌 ‘세관장’으로 세리 중에서도 으뜸 세리입니다. 게다가 ‘부자’라고도 밝혀집니다. 그만큼 그는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괴롭히며 부당한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운 자입니다. 바로 이 큰 죄인을 예수님께서는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이에 자캐오는 회개합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네 곱절은 구약의 율법이 명하는 것 이상의 배상이고 로마법에서도 명백한 절도행위의 보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회개한 자캐오는 구원의 소리를 듣게 되지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예루살렘에서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회개를 강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벌써 11월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하느님은 그가 참회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마냥 기다리고 계시지 않음을 기억합시다.
묵상 : 고해성사가 힘들어 주일 미사 참례를 쉽게 포기하거나 성당에 왔어도 고해소 앞에서 망설인 적은 없나요?
연중 제32주일 · 루카 20,27-38
지난여름, 세계 여의사회 회장에 취임한 해부학자 박경아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박 교수의 어머니는 한국 최초의 여성 해부학자인 나복영 교수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나 교수도 같이 인터뷰에 응했는데 사후(死後)의 세계를 ‘천당 가는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착하게 살면 결국 돌려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착한 생각과 행동을 하려면 몸뚱어리가 있어야 하잖아. 죽고 나서는 아무리 하려 해도 안 되거든.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 착하게 살기… 그게 중요한 거예요.”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은 죽음의 실체와 그 죽음을 넘어서는 그리스도 교회의 종말론적인 희망을 묵상케 합니다. 즉 우리의 생명이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하느님의 생명에 우리를 연결시키는 부활의 신비에 개방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중 모세오경만 인정하며 부활을 부정하고 있던 ‘사두가이’들이 이 부활 문제를 교묘히 꾸며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질문을 합니다.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오는 수혼법(嫂婚法, 아들 없이 남편이 죽은 과부가 고인의 형제와 결혼하는 법)을 내세우지요.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임을 가르쳐주시면서 죽은 이들이 어떤 모양으로 부활하는지 답변하신 다음(20,34-36), 이어서 부활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 즉 탈출기 3장 6절을 제시하시지요(20,37-38). 생사를 초월하여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영원한 삶 곧 부활이며,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이 전제된 죽음은 사람의 온 삶을 희망차게 만듭니다.
묵상 :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는 대목을 오늘 복음과 더불어 묵상해 봅시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길을 걷는 걸음걸음마다 낙엽을 밟게 됩니다. 그때마다 조병화 시인의 「낙엽끼리 모여 산다」라는 시(詩)를 묵주기도 끝에 더불어 읊조립니다.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은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기 전 우리에게 세상 끝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믿는 이들의 삶을 제시 해주고 있습니다.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말라 3,19) 제1독서는 이렇게 세상 마지막 날 하느님의 개입을 언급합니다. 의인이 박해를 받고 악이 지배하는 악한 시대가 가고 하느님께서 악을 물리치시는 행복한 미래의 도래, 바로 여기서 종말론이 싹트지요. 이러한 배경 안에서 오늘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21,19) 두려움과 세상 것들에 마음 뺏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인내의 삶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2)
우리도 낙엽처럼 누워 살아야겠지요. 낙엽끼리 모여 살아야겠지요. 지금의 자리보다 높게 있던 지나간 계절을 생각하지 않기로 맹세한 듯 사람들에게 자신을 밟고 가게 하는 낙엽처럼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묵상 : 홀로 깊어가는 가을을 따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 봅시다.
대도大盜, 성聖 디스마스Dismas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王) 대축일로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시간의 주인이요, 자연의 섭리자임을 고백함은 물론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의 주인이 진정 그분이심을 생각해보라는 뜻이 아닐는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왕이신 예수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명의 죄수 중 한 명이 주인공 같습니다. 왜냐하면 극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죄를 뉘우치며 신앙고백을 하여, 마침내 예수님과 함께 천국 낙원의 티켓을 거머쥐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23,42) 이렇게 신앙고백을 한 착한(?) 죄수에 대해 복음은 더 이상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름도, 십자가 왼쪽에 달렸는지 오른쪽에 달렸는지도 우리는 정확히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과 달리 그는 십자가에 달릴 만큼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약외경의 하나인 「니코데모에 의한 복음」은 그의 이름이 ‘디스마스’라고 알려줍니다. 요한 금구(金口)성인은 비록 비유이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났던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목에서 디스마스도 유사한 절도 혐의로 붙잡힌 것이라고 전해줍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한눈에 알아보고 겸손하게 주님께 신앙고백을 했다는 사실이지요. 인생 막판에 정말 대단한 것을 훔친 분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복음의 죄인은 단 한마디로 구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훔쳐보았지만 다 무의미했음을 깨달았겠지요. 부럽습니다. 이 믿음 깊은 도둑이.
묵상 : 한 눈에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께 신앙고백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기도와 성실한 삶은 그러한 순간을 준비케 합니다.
지난달에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믿나이다. ”이어 사도신경 묵상입니다.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셨고, 종말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순교자 스테파노도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고백하는 ‘하늘’은 맑고 푸른 하늘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께서 원래 계셨던 곳을 뜻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느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고 함께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이 이를 말해줍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5,22-23)
교회 공동체는 사심판과 공심판에 대하여 고백합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이 사심판이라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심판이 공심판입니다. 심판에 따라 천당과 연옥, 지옥 상태에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한 5,28)
그러나 주님의 심판 소식은 우리에게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의 소식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신 분,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시편 145,8-9)으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일찍이 “마라나 타 – 주여, 오소서!”(1코린 16,22; 묵시 22,20)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쉽게 읽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
지난달“성령을 믿나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83항~747항>이어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나이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748항~975항 >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불러 모음’을 뜻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도록 불러 모은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몸이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창조에서 예시되고 구약에서 준비되었으며,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세워지고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스런 부활로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해 구원의 신비로 드러났으며 구원된 모든 사람들이 모인 하늘나라 영광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778항).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며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사십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다고 고백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교회를 만드셨으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을 바치셨고, 거룩하신 성령께서는 교회에 생명을 주십니다. 또한 교회는 모든 민족들에게 파견되었고, 모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인 열두 사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가 교황입니다. 로마 교회의 주교인 교황은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 교회의 목자입니다.”(936항) 그리고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입니다. 주교들은 협력자인 사제들과 부제들의 도움을 받아, 신앙을 올바르게 가르칠 임무와 하느님에 대한 예배, 성찬례를 집전할 임무, 참 목자로서 자기가 맡은 교회를 다스릴 임무가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며 가정, 사회, 교회 안에서 맡은 바 임무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청빈과 정결과 순명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긴 수도자는 봉헌생활을 통해 봉사하며 교회를 위해 헌신합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는 말은 ‘거룩한 것들을 함께 나눔’과 더불어 ‘거룩한 사람들 사이의 친교’를 의미합니다(948항). 신자들의 신앙은 사도들에게서 받은 교회의 신앙이며, 나눔으로써 풍부해지는 생명의 보화입니다. 친교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모든 이의 공동 소유로 여기고, 가난한 이웃의 불행을 도와줄 준비와 열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한 행동은 그것이 가장 작은 행위라도 모든 성인의 통공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이가 서로 결합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퍼져 나갑니다. “주님께서 당신 위엄을 갖추시고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실 때까지, 또 죽음을 물리치시고 모든 것을 당신께 굴복시키실 때까지,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는 지상에서 나그넷길을 걷고 있고, 어떤 이는 이 삶을 마치고 정화를 받으며, 또 어떤 이는 ‘바로 삼위이시며 한 분이신 하느님을 계시는 그대로 분명하게’ 뵈옵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954항)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잠든 형제들과 현세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으며, 서로를 위한 기도로 더욱 단단해집니다. 또한 동정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구원사업과 성령의 모든 활동에 완전하게 함께하심으로써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십니다. 하늘에 오르신 성모님께서는 끊임없는 기도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