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책을 읽다가 ,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에서 진리를 새삼 발견하고 무릎을 치며 감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하나를 이루어 아기를 갖게되었을 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미 배워 아는 바처럼
아빠의 정자가 엄마의 난자를 만나 엄마의 자궁안에 수태가 되지요.
그 순간에 이미 하느님의 섭리는 한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서
배웁니다.
그런데
수태된 생명은 자라서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또한 하느님의 작품이신 모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인데 그 잉태된 아기는 엄마 몸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닌 완전한 독립된 개체로서 그곳에 머믈며 자라서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경우에서 처럼 한 독립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고 또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 어떤
한 종속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빠, 엄마와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를 맺어 이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그 숭고한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는 관계이면서 누구도 누구의 종속관계를 이루지 않고 궁극적으로 다 각각의 독립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니까요.
다만 혼자의 능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갈 수 있을 때 까지 부모의 보호와 관찰을 필요로 하게 되겠지요.
왜 이런 원론적 논리가 여기서 새삼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모테에 잉태된 어린 생명은 그가 완전한 독립된 생명으로서의 권리를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를 포함한 그 누구에 의해서도 그 생명을 소홀히 하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음을 새삼 다시 깨닫고
그 진리를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 Abortion ) 는 무서운 죄가 되고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잘못 이해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고의로 어기면서
행하는 이들이 소위, Pro- Choice 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Pro- choice 란 자신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으로 그레서 자신의 뜻대로 모태의 생명 마저도
죽일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입니다.
나의 주장이 창조주, 하느님의 뜻보다 더 앞 설 수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임신한 엄마의 건강이나 생명의 위험을 보면서도 그 이유로 모태안의 건강한 아기를 훼손할 수 없는
이유도 고통스러운 경우이지만 우리가 바로 이해해야만 할 점일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유로든 낙태보건소를 찾아가 낙태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그 엄마의 뱃속에서는
육신의 귀엔 들리지 않을지라도
울부짖으며 호소하는 어린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 Mom, I am here inside of you. I want to see you soon as I come out there right next to you.
Please think twice. Don;t kill me. Just walk out and go home right now.
I love you, Mom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