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위한 기도



어제,

어떤 이가 나에게 기도를 부탁해 왔었다.

자기하고 함께 사는 강아지를 위해 기도해 주겠냐고 부탁을 해 왔었다.

강아지가 요즘 시들시들 아파하는 것 같아 의사에게 보이려고 데려가는 길인데

제발 암 같은 무서운 병이 아니도록 그 강아지를 위해 기도 해달라고 했다.

 

난 참으로 난감했다.

난 참으로 민망하고 착잡하고 그래서 묘한 기분이 되어 떨떠름하고 거부감도 생겼다.

 

그래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기도를 하겠다고도, 하고싶지 않다고도 말 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낳아 키워준 부모의 영혼을 위해서도 하고싶은 만큼 자주 기도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닌데,

생전에 알았던 친구나 친지, 같은 교회에서 함께 하느님께 예배하며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던 그 교우들을 위해서도

그가 살았을 때나 나의 곁을 떠나갔을 때도 기도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닐 텐데 아픈 강아지를 위해 기도를 해 달라니 착잡하고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동물을 위한 기도를 한다는 소리도,  해달라는 부탁도 처음이었다. 

 

더구나,

내가 무슨 치유하는 은총을 받아 내가 기도하면 아픈 사람도 아픈 강아지도 곧 낫고 벌떡 일어날 일도 아닌데

그런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다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내킬 수 없었다.

 

나도 젊은 시절, 한 때 강아지를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부산까지 친구를 찾아 방학에 놀러갔다가 길에서 할아버지가 팔고있는 갓낳은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그 돈이 내가 집에 돌아갈 차표를 살 마지막 돈인줄도 잊고 몽땅 주고 샀다가 차비 때문에 큰 고생을 했었다.

강아지를 태울 수 없는 기차에 몰래 교복안에 강아지를 쑤셔넣고 ? 서울까지 오는 동안 그 강아지가 참다못해

내 옷에다 모든 용변을 실례를 해서 내가 그 뒷처리로 크게 황당했던 생각도 난다.

 

그런데 강아지를 좋아했던 나의 마음은 이제 그 강아지들에게 시기와 질투심으로 미워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아주 싫어하는 마음으로 까지 변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즈음의 강아지들은 키우는 애완동물( Pet )이 아니라 그걸 뚸어넘어 사람위에 강아지가 있고 사람의 상전 같다.

Homeless인 사람은 밖에서 추위에 떨며 주린 창자를 채우려고 구걸해도 강아지는 쏘파에서 주인과 테레비를 보며 

골고루 배합된 영양식을 때 맞춰 공급받는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먹어 당뇨가 생기고 혈압이 올랐다고 주인더러 의사에게 데려가라 속 썩여준다.

사람은 아파도 보험이 없다고 병원에서 박대를 받아도 강아지는 Animal Hospital에서 큰 대우 받는다.

 

나는 내가 개밥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강아지 병원비를 대는 것도 아니면서 배가 아파 소릴 지른다.

” Its NOT fair. What is that?  This is NOT acceptable at all.  Please Stop it ! ”         

 

이런 나에게 자기의 강아지를 위해 기도해 달라니 말이 돼 ?

” Hey, Are you kidding me ? You asking me to pray for your animal ? You must kid me. “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왜 ? 나한테 까지 그의 아픈 강아지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을까.

특별히 나에게 부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답답한 가슴이 되어 부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강아지를 키우며 함께 살다보니 정이 들어 가족처럼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남에겐 그깟 한낱 강아지, 동물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에겐 귀한 생명처럼 여겨질 것이었다.

그래서 강아지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같았을지 모른다.

 

나는 다시 연락을 하고 나도 당신의 기도에 합류하여 그 강아지를 위해 기도하마고 응답해 줬다.

내가 기도한다고 내가 기도에 합류한다고 그 강아지가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강아지를 위해 기도하지만 실은 그 강아지를 가족처럼 여겨서 함께 아파하는 그를 위로하는 일이다.

나는 사랑스런 강아지 때문에 마음고통을 겪을 그가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며칠전 신문에는,

개가 앞 못보는 소경인 자기의 주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해냈다는 기사가 나고 그래서 그 개는 주인과 함께 뉴스를 타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훌륭한 일을 하는 개가 있다.

또 필라델피아에서는 낙태전문의가 매일 자기가 낙태시킨 어린 아기의 옴을 포장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 변기에 던져넣고 물을 내린 아기가 수백명도 넘는다고 그의 조수로 일했던 간호사가 증언했다.

개만도 못한 인간백정의 표본이다.

 

동물인 개로 태어나서도 사람보다 좋은 일 하는 일도 보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개만도 못한 짓만 하다가 죽어서 까지 영겁의 게헨나로 떨어질 영혼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의 강아지를 위해 기도해 달라던 그에게 잠시의 기도와 함께 나는,

이 말을 덧붙히고 싶다.

 

” 강아지가 치료를 잘받고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오거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겠죠.

 좋은 일입니다. 기뻐하세요. 그리고 그 강아지를 또 계속 위해주고 사랑하겠지요.

 좋은 일입니다. 동물도 사랑받고 보호받은 권리가 있을 것 입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이니까요.

 사람에게 동물을 학대할 권리가 없을 것 입니다.

 그래도 강아지는 동물입니다.

 동물이 사람보다 더 귀할 수 없습니다.

동물이라고 학대할 권리가 사람에게 없듯이 사람만큼 아니면 사람보다도 더 귀히 여길 수는 없을 것 입니다.

동물을 사람만큼 아니면 사람보다도 더 사랑한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멈추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칫 위선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웃이 가난하여 굶주리고 나약해서 이웃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서러워 할 때 그 이는 못 본 채하며 

외면하면서 나의 아파하는 강아지를 위해서 아는 모든 이들에게 기도까지 부탁하는 일은 누가 보아도 좀 어색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는다고 늘 입으로 말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거스르는 일이겠지요.

 

부디 그까짓 기도 한번 부탁했을 뿐인데 웬 쓸데 없이 잔소리가 많으냐고 여기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당신도 나도 다 귀담아 들어 새겨야할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했을 뿐이었다고 좋게 받아주세요. 

  

Because that is NOT right but it should be WRONG to our Lord, The Creator.  please think of it again twice. 

창조주께선 그렇게 지어내시진 않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동물은 동물이도록 또 사람은 사람처럼 대우하며, 사랑받도록 세상이 그렇게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제 만나는 이웃에게도 당신의 강아지한테 해주는 만큼만이라도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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