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
듣고,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여객선의 침몰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다치고 희생된 사건을 다만 멀리 떨어져 뉴스를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미처 다 펴보지도 못한 젊은 생명들의 희생이 너무 많고 그래서 그 일이 너무 커서 거기에 가려져서 그 안에 같이 있다가 희생되었을 다른 이들, 어른들이나 노인들은 변을 당하고도 별로 뉴스에 취급되지도 못하고 있어 보임니다.
그냥 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뉴스를 보고 있는 나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 중에 가족이나 친지가 없어 다행으로 여기며
한결 놓이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만 뉴스로 그 광경들을 바라 봅니다.
내 일이 아니고 남들의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비통하고 슬픈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그럴진댄, 그 가족들은 어떤 마음이겠나 어림짐작을 하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사건은 남들의 불행만이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이나 친지가 그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남들만의 불행이라 여길 수 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연히 내 가족이 그 시간에 그곳에 있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먼곳에서 앉아 뉴스를 보고 있지만 나는 그들과 같은 핏줄을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그들도 나 자신이나 다름없이 창조주, 하느님께서 빚어 지으신 고귀힌 인간생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가족이나 아니면 내 자신의 불행을 만나는 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지금 나는 그 큰 사건을 나의 일이라기 보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남의 일로 여기며 바라보고 있을 것 입니다.
그건, 나의 가슴이 피페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마음안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시들고 메말라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일을 다만 뉴스로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그 사건 자체보다도 더 두렵고 무서운 ( 꼴 )을 그 안에서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게 되는가요?
(살아있는 나머지 사람들) 이 물에서 이미 숨 졌거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며 몸부림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희생자들)을 하나라도 어서 더 빨리 구해보려는 노력도 하기 전에 우선 (싸움)을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고 손가락질부터 시작합니다.
” 너 때문에 그랬어 !”
“아냐, 그 놈이 나쁜 놈이야.”
” 그들을 얼른 잡아 처벌해야 돼.”
누구도 먼저 내 가슴을 치며 ,
” 아! 그건 나 때문이었어. 내 잘못이야.” 그런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 아이들을 가르치던 한 선생님은 도의적 책임을 느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은 또다른 답답하고 안타까움 을 갖게 합니다.
아끼던 제자들에 대한 속죄하는 마음이 동기였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사건에 집접 관련된 이도 아니고 그러면 그이는 그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앞으로 나머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열정으로 좋은 사람 만드는 일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훌륭한 교육자의 마음 아니었을까 그런 안타까운 생각도 하게 됩니다.
배의 선장이 그 잘못의 원인이라면 한 나라의 선장은 누구입니까.
사고현장에 나온 나라의 대통령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잘못을 찾아내서 반드시 처벌하고야 말겠습니다.” 그리고는 테레비 카메라 앞에서 지금 구조작업 하다 말고 도열해서 경례를 하는 이들과 악수를 하고는 떠나갑니다.
구조가 더 먼저인지 처벌이 더 시급한지도 헷갈리는 나라의 지도자, 선장 같았습니다.
그 선장은 그 전에도 다른 일로 그랬던 것 처럼 사람들의 비난이 빗발치듯 하자 그제야 카메라 앞에 나와 고갤 숙인 모습을 보이며 송구스럽다고 비서가 써준 글을 읽어내려 갑니다. 그건 그이의 사과하는 마음은 아니겠죠.
그 말이 떨어지자,
법을 다루는 이들은 사방으로 흐터져 선박회사를 압수수색하여 비리를 찾아냈다고 무슨 큰 보물이라도 바다에서 캐어 낸듯이 기염을 토합니다.
그렇게 큰 비리를 왜 여태 못 찾고 있다가 사고가 나자 갑자기 찾아낼 수 있었는지 그 재주가 비상합니다.
사고가 없었으면 비리는 어디에 영영 꼴꽁 숨어있었을지요.
그동안 ‘돈이면 안 되는 일 없어서 서로 쉬쉬 하고 지냈으면 처벌 받아야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 감독기관은 아닌가요? 거슬러 올라가자면 처벌하겠다고 큰소리 하는 그들이 바로 처벌받아야 할 당사자는 아닌가요?
어째서 모두 ” 네 책임이지만” “내 책임은 아냐.” 인가요?
그런데 나는 그보다도 더 두렵고 더 무서운 중한 나쁜 증세를 그 뉴스를 보면서 보는 것 같았습니다.
경우에 따라 미덕도 된다는,
그 (망각의 미덕) 때문에 나는 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두려워 떨게 됩니다.
이 선박사고가 나기 바로 두어 달 쯤 전에 경주에 여행갔던 많은 대학생들이 수난을 당하는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온나라가 시끄러웠었습니다. 야단들이 났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사고는 어덯게든 수습이 되고 (지나간 사건)으로 묻히게 되엇습니다.
모두 다시 조용해지고 옛 생활로 되돌아가 평상의 삶을 살고 있다가 불과 두 달만에 또 이런 변을 당했습니다.
그동안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엇습니까?
방송국 마다 앞 다투어 똑 같은 프로그램으로 똑 같은 얼굴들을 많은 돈 주고 모셔다가 똑 같은 소리들만 앵무새처럼 말하는 프로그램들을 내 보내며 진행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겠지요.
그 프로들은 다른 게 아닙니다.
‘무엇을 먹으면 몸에 좋고 예뻐지고 그래서 오래오래 늙지도 않고 잘 살 수 있다’ 는 그런 거 지요
그것들 마저 또 같은 말도 아닙니다.
거기 나온 이들은 또 서로 틀렸다고 자기 주장만 맞다고 침을 튀깁니다.
보는 이들은 헷갈리면 각자 알아서 해보라는 거겠지요.
방속국들은 돈이 썩어나고 보는 이들은 돈이 넘쳐나서 멋을 더 사먹어야 백살도 넘도록 팔팔하게 살까 그것들을 찾아다닙니다. 이미 포동포동하고 팔팔하게 보이는데도 말이지요.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동안에 낡은 건물은 넘어지고 썩은 배는 가라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고쳐야 하는 사람들은 그 수리비에 들어 갈 돈을 감독기관을 찾아다니며 뇌물로 쓰고 있었나 봅니다.
뇌물을 먹은 이들은 입 다물고 말했겠지요.
“그저 조용히 암말 말고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하세요.”
무사안일 바라는 사회는 그 안에서 썩어가게 마련이지요.
물줄기를 따라 정직하게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지요.
신앙하는 곳, 교회라고 예외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사안일로 영위하며 그저 아무 일만 안 일어나기만을 마르고 닳도록 바라던 곳에서 바라는 대로 그렇게만 되지 않았던 한 사례를 아마도 우리가 보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이해가 어려운 일은 사고가 일어나면 온 나라가 예정했던 다른 모든 행사도 멈추는 일입니l다.
모두가 다 무너지거나 가라앉을 위험이 발견됐다는 걸까요.?.
사람이 어떤 부위가 아프게 되면 그곳을 치료하고 다른 건강한 부위와 함께 살아가도록 조치하기 보다는 그 기회에 온몸의 기능마저 멈추게 하고 온몸이 죽은듯이 해야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내 가슴을 두드리며 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며 회개하지 않는 곳은 그에 따른 결과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내 탓이오 !”를 안하고 날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이 없는 곳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기회를 엿보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던 나는 잠시 손을 놓고 (나)를 돌아다 봅니다.
나는 내 가슴을 두드렸던 것이 언제였을까?
나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아침에 눈을 뜨고 그 오늘을 새로워지는 시간되게 최선으로 바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제처럼 그저 다시 밝은 또 하나의 다른 날로 여기고 무사안일만을 영위했을까?
나의 양심은 가슴을 두드리며 새로워지려 했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내 입을 막습니다.
나는 전에도 그렇게 하고는 작심삼일 했었듯이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또 한번 마음을 다져 봅니다.
그래서 새로워지기 전에 우선 가슴을 두드린다.
좀 더 세차게 두드린다.
아프도록 두드린다.
“주님, 그건 모두 제 탓이었습니다. 내 탓이이고 또 내 탓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