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이 맥박, 쥐의 맥박 )
그날엔 이십삼 년만에 의사선생님 앞에 겁먹은 얼굴을 하고 앉았었다. 먹어야 한다는 약처방을 받기위해서였다.
내 가슴은 새 가슴이나 되는듯이 뛰고 있었다. 너무나 오랫만에야 의사선생님 앞에 왔으니 혹시 이것저것 나쁘다고나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내 손목을 쥐고 뭔가를 감상하는 듯했다.
음악감상하는 이는 봤지만 손목도 감상하나 싶어 바라봤다.
“맥박이 왜 이리 빠르세요?”
‘예? 아, 아마 지금 겁먹어서 그럴까요?”
“먹을 게 따로 있지 뭐하러 겁먹어요? 의사가 무서워요?”
친절하신 선생님은 자상히 설명해 주었다.
“맥박은 느릴수록 좋아요. 거북은 일 분에 단 두 번, 하지만 쥐는 일 분에 사오백 번이나 뛰지요. 체신머리없이..
거북은 장수동물이고 쥐는 그 반대.”
난 충격받았다. 왜냐하면 체신머리 없는 것도 맘에 안 들지만 단명하는 일 역시 마음에 썩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네요. 저는 오늘만 빼고 평소에는 아주 느리거든요? 일 분에 한 번 어떤 때는 전혀 뛰지 않을 때도 있는 걸요.”
방을 나서는 나를 선생님은 참 요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저 사람을 내가 또 만나게될까?’ 그러는 것 같았다.
( 엑스트라 )
만약 기적이라는 게 있어서 나한테 영화배우로 출현해달라는 청탁이 들어온다면 그들은 물론 반드시 나를 주연배우로 쓰려고 하겠지. (기왕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면 이렇게 꿈이라도 야무지게 꾸어야지.) 나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엑스트라는 사양하고 돈은 한 푼도 못받더라도 기어이 주인공으로 써달라고 하겠다.
그건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아카데미상을 받고 싶다는 그런 속된 (?) 욕망때문은 결코 아니다.
전쟁영화에서 보면 엑스트라는 총알이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벌서 쓰러져 마땅한 장례절차도 없이 어디로 가버리는데 반면에
주인공은 총알이 헤아릴 수 없게 많이 박혀도
부하들과 하고싶은 얘기 다 하고 고향에 있는 순이에게도 안부 꼭 전하라 하고 그러고도 죽지는 않고 병원으로 후송되던데
내가 왜 기를 쓰고라도 주인공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NO WAY !
I want to live long life too. sure. 누구 맘대로.
( When I fall in love )
체감온도 영하 30도.
너무 춥다. 모처럼 바깥출입도 못하고 벌써 이틀 째 방에 갇혀 지내자니 누구 말마따나 답답하고 그래서 미치고 팔딱 뛸 것 같다.
기쁜 소식 올 일도 없지만 그래도 편지통을 열어보러 내려갔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 것도 없고 피짜 하나 사면 하나는 반 값에 준다는 광고지가 하나 들어있엇다.
김 빠지고 맥도 빠져서 돌아서며 나도 모르게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 When I fall in love…”
그 다음 가사는 잊었으니 당연히 … 이렇게 표현해야지.
내 등뒤에서 할머니들이 날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 쯧쯧.. 안됐어. 저사람. 지까짓 게 뭔 사랑에 빠질 일이나 있다고 저런 노래를 함부로. 가사도 한 줄밖에 모르는 게.
빠지려면 물에나 빠져야 건져라도 주지 뭔 당치도 않은 사랑타령이야. 건방지게 우리들 앞에서..”
( 참, 세월은 기똥차게 빠르네요 )
메리 크리스마스 ! 그러고 돌아선 거 같은데 어느새 일월 7일이잖아요.
세월은,
기다리는 사람한텐 너무 느리고,
겁내는 사람에겐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겐 너무 길고
기뻐하는 사람에겐 너무나 짧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겐 영원하다죠?
그러니 왜 나에겐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가는 건지 난 다 알아요.
( 나는 큰 일 났네 )
자동차기름 값이 계속 뛰어오르며 갤론 당 $5.00 까지 넘나보고 있어서
내가 성당에 가고오는 것 조차도 부담스러웠던 때,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가까운 지인에게 한숨을 섞어 흰소릴 했었다.
“내가 깨스 값 $1.99 까지 내려가는 꼴 볼 때 까지만 살아야 할텐데..”
일단 한 번 오르면 내려갈 줄은 모르는 물가를 잘 알고 있는 내가 그걸 믿고 장담하듯 큰 소릴 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추세를 본다면 $1.99 가 실현되는 일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했었는데 정말 설마가 사람 잡게 생겼으니.
며칠 전에 실로 오랫만에 깨스통을 그득 채우고나서 카운터직원에게 사정했다.
제발 본사에 연락해서 $2.00 이하로 내려가는 일만은 없도록 부탁해달라고.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봤다.
“께스 값 내려달라는 사람들은 봤어도 그만 내려달라는 사람은 머리털 나고 첨 보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대체 왜 그러는데요?”
“자세한 건 묻지마. 사람생명이 달린 문제야.”
( 언감생심 )
How dare.. ?
감히 어찌 그런 걸 바라냐? 그런 뜻이라지요.
이제는 시골이 서울 같고 서울도 서울같이 됐지만 그 시절엔 학교도 없는 시골벽지나 외딴 섬 같은 곳엔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그런 곳에 가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봉사를 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럴 쯤에 이미자라는 가수가 노래까지 불러서 더 그런 일을 원하는 대학생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뭐 그런 식의 가사였던 것 같아요.
총각이었던 내가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물론 섬아을에 가기위해 총각으로 있었던 건 아니고 날 받아주는 이가 없어 할 수 없으니 총각으로 남아있었던 거죠.
(괜히 이걸 쓰느라고 총각으로 있었던 이유를 밝히는 바람에 과거의 흉만 들켰잖아요.)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사무실로 달려가 줄 맨 앞에 선 것은 물론 나였지요.
면접 차례가 되어 가슴을 진정시키며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들어갔어요.
기왕이면 아릿다운 열아홉 살 처녀가 잇는 곳을 원한다고 말할 준비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봉사활동을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을 배짱까지 들고 들어가 시험관 앞에 앉았습니다.
나의 응모서류를 대충 보고 내 얼굴을 뚫어지게 드려다보던 그 시험관은,
” 학생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세요.
우리는 진짜 봉사자를 구하는 거예요. 학생 같이 열아홉 살 처녀나 노리려는 그런 사이비는 안돼요.
우리는 학생을 열아홉 살이 아니라 예순 아홉살 난 노처녀가 있는 곳이라도 보낼 수 어 없어요.”
무안해진 얼굴로 나서는데 뒤에서 그러더라고요.
“언감생심. 아니 어디서 감히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 꿈 깨시오 꿈을.’
그 때 저의 어머니가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얘. 날이 다 밝았는데 너는 웬 잠꼬대까지 그렇게 하냐?”
끝.
( 가끔 이렇게 추운 날이면 저는 오늘처럼 이런 꺼벙한 우스개를 생산하곤 한답니다. 날씨 탓일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