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에 다녀와서

총회에 다녀와서

저와 함께 계셔주십시오. 제가 고통 중에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91 Be with me Lord, when I am in trouble, be with me Lord, I pray.

 

총회기간 중에 제 마음에 깊이 머물렀던 기도였습니다.

 

화요일 총회를 위해 Sierra Madre, California에 있는 통고의 성모님 피정 집(Mater Dolorosa)을 찾았습니다. 4년 만에 열리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 온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서도, 어떤 분들은 4년 만에 보는 분들도 있었지만 피곤에 젖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습니다.

 

총장님의 개회사 말씀으로 총회를 시작하면서 예수 고난회원의 정체성을 들으면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과연 얼마나 자주 불행 중에 있는 이들을 찾았는가? 얼마나 자주 내가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숨죽이고 살았는가? 구름 저편에 있는 두려움과, 회의 그리고 어려움만 생각날 뿐 함께 계신 그분의 현존을 살아내지 못한 내 자신이 슬퍼졌습니다. 마치 바짝 마른 스펀지처럼 푸석한 모습으로 그분 앞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분의 현존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내 마음은 예수님의 고통의 깊은 영성에 목말라 함을 느꼈습니다. 많은 문제들과 또 어떻게 다음 4년을 살아가며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고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기에 앞서 우리 앞에 있는 두려움과 (점점 줄어드는 회원들의 숫자와 늙어가는 회원들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 아픔(지난 4년간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분들)을 함께 기억하며 깊은 구름에 가려있는 듯 회색의 마음이 짙어져 갈 때 Walk by faith not by sight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고린토 25,7) 말씀 안에서 여전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카고 성당에서 1년 반 동안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점점 노령화 되는 공동체, 일할 사람들은 줄어들고 그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불만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공허한 소리만 반복되는 힘들어 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슬픔보다는 차라리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여러분에게 고백해야 할 것들이 많음에 부끄러운 마음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늘 옮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라 말하면서도 내 삶의 옳음만 강조하고 살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성당에 부임해 온 것은 신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하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는 틀린 것이 없다고 그저 내가 해야 할일을 할 뿐이라는 마음에 이웃을 향한 넉넉함을 잃고 살았던 각박함에 슬퍼지고 아팠습니다. 내가 옳은 삶을 살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얼굴로 이웃을 대했고, 그만큼의 여유도 없었기에 늘 각박하고 어두운 얼굴로 신자들을 대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려있는 이들 아니 하느님께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려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좀 더 부드러운 얼굴로 신자들을 만나고 싶은데 할 일은 태산인데 비해 함께 할 사람이 없음에 초조해져 두려움의 구름 저편으로 또 다시 숨고 싶었던 마음이 컸음을 고백합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한다는 겨자 씨 만한 믿음도 갖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바짝 말랐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바짝 말랐던 내 마음에 하느님의 온기와 그분의 말씀이 적셔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기도의 시간 안에서 우리를 빚어내신 하느님을 기억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진흙의 모습에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신 그분의 생명을 기억하며 내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하느님의 숨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깨져야하고 얼마나 회개해야 당신의 숨을 살려낼 수 있을지에 머무르면서 하느님께 온전한 내 맡김이고 이는 내 자신을 비우는 것임을 배워갔습니다. 점심식사 후 매일 다른 이들과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내겐 은총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수련장이셨던 신부님과의 대화에서도 하느님은 계셨습니다. Love is acceptance as who they are.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신 그분의 말씀에서 나를 받아주지 못하는 답답함에 갇혀 사랑 받고자만 했던 내 자신을 보며 또 다른 회개가 필요했음을 알았습니다. 늘 신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의 답답함만 얘기했지 남의 답답함을 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외롭고 힘들다고 이야기 할 줄만 알았지 내게 외롭고 힘들다고 전하는 이들의 마음을 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Surrender는 내어 맡길 때 순명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며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형제자매들을 받아들인 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Storm의 폭풍우 안에서 잠을 자고 계시는 그분의 현존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모든 걱정과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분의 현존 안에서 그 역경을 마주보고 함께 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9일 동안의 총회는 지루한 모임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제게는 하느님의 현존에 깊이 머무는 피정의 시간이었습니다. 구름(Cloud) 저편에 있는 걱정과 두려움은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며 (Walk)우리게 부어주신 그분의 숨결을 기억하며(Potter) 하느님과 형제자매들에게 맡겨드릴 줄 아는 순명의 마음을 살아가는 것이(Surrender) 세상의 폭풍우 (Storm)속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이번 총회에 깊이 배웠습니다. 총회를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많은 신자들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며 회개의 시간을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도 감사드립니다. 희망에 찬 공동체가 우리의 약점으로 인해 하느님의 은총이 스며들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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