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과 Halloween 그리고 위령성월

모든 성인
대축일과 Halloween 
그리고
위령성월

 

지난 며칠은 시카고의 늦가을답게 쌀쌀했습니다. 와중에 바람도 세차 불어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낙엽들도 떨어져 썰렁한 몸체를 드러 내놓고 있습니다. 이제 죽음을 준비하듯,


나무의 색깔도 잎도 모두 죽은 앙상함으로 버팅기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늘도 회색빛으로 쌀쌀함과 더불어 왠지 모를 허전함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의 날입니다. 위령성월인 11월을 맞으면서 하루 전날 Halloween 지냈습니다. 할로윈은 매우 그리스도교적인 축제입니다.

할로윈이란 신앙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할로윈 (Halloween) 어원은 ‘hallow’ 앵글로색슨어로 성인(聖人, Saint) 뜻하며, 모든 성인 대축 전야제를 뜻하는 ‘All Hallows Eve’ 줄어서


‘Halloween’ 되었습니 .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주님의 기도의 영어 기도를 보면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allowed Thy name…….  
하는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는 부분에서 거룩하다 뜻으로 일반 영어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이긴 하지만 거룩할 () 뜻하는 단어입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11 1) 그대로 모든 성인들을 위해, 특히 축일 알려지지 않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가톨릭의 축일 하나입니다.


전야제인 할로윈은 모든 성인의 전야제가 되겠지요. 켈트 전통에서는 1년을 겨울과 여름으로만 나누었고 이중 1 겨울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겨울의 시작은 해의


시작이기도 했지요.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밤에 저승의 문이 열려서 그들의 조상들은 물론 온갖 귀신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온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할로윈도 여러 가지 태로 나타납니다. 아일랜드에서 흔히 할로윈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랜턴(Jack O’Lantern)’ 탄생했는데 이는 천국과 지옥 양쪽에서 거부당 영혼들 우리식으로


말하면 구천을 떠도는 혼령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순무(빨간 ) 지고 시작했으나, 미국에서는 순무 대신 자라던 호박을 쓰게 것이 점점


퍼져나가서 이제는 마켓에서 쉽게 있는 인기 상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할로윈 기간 동안 마시고 파티를 벌이는 전통은 남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본래 죽은 영혼들을 기리던 남미의


전통이 가톨릭 문화에 융화되자 점차 무덤으로 가서 죽은 친구나 친지들을 기리며 술을 마시고 노는 날이 되었고, 이것이 다시 북미로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멕시코에서는 11 1일이 할로윈과 비슷한 취지의 축일인 죽은 자의 (Day of the Dead)’ 지낸다 합니다.

 

할로윈의 날에 아일랜드와 미국 아이들은 악마, 몬스터, 마녀 뭔가 악해 보이는 존재로 변장을 하고 이집 저집 드나들며 “Trick or Treat!!”
이라고 외칩니다. 대략 장난을 당하기 싫으면


과자주세요!!”라는 뜻이며, 아이들을 맞이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요구하는 대로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는게 전통입니다. 사탕을 주면 유리창에 낙서를 하는 것이 오래된 례이지만 요즈음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가정집만 방문하 편이고, 앞에 랜턴이 있는 집은 대부분 이런 풍습을 지키는 람이라는 뜻이니 랜턴 (호박으로 만든 도깨비) 있는 집들을


아이들은 찾아갑니다. 이렇게 할로윈은 죽음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며 민족들의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까요? 지옥과 천당 그리고 연옥은 어떤 모습일까 ?

시원하게 대답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곳을 경험한 사람들 없기 때문이고 자신있게 천당과 지옥 그리고 연옥에 대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고하게


있는 사람 세상엔 없기 때문이겠지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천당에 나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고 쉽게 듣는 이야기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쁜 짓을 많이하면 받는다고 알고 있고, 제가 어릴 적에 들었던 장화홍련전이나 몽당귀신, 빗자루 귀신의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은 착하게 자는 무서우면서 재미있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한 사람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어찌 가난한 사람이, 슬퍼하는 사람이,
자비롭고,
의롭고,
온유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할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바보의 삶을 뛰어넘어 불행한 사람들이 분명 할진대 어찌 불행한 삶에서 행복을 찾으라 할까요?
그래서 복음은 반전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찌보면 세상 사람들 모두 찾고 있는 행복을 불행이라 당당히 말할 있는 반전이 결국 수님을 십자가에 박히게 했지만 조금의 타협도 없이 아버지의 뜻을 전하신 그분의 삶을 우리도


따르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1독서인 묵시록을 읽으면서 십사만 사천이란 숫자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종파에서는 말을 인용해 사람들에게 주며 선교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있듯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도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어찌 십사만 사천의 숫자로 제한하시겠습니까?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구원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선물이 어떤 결실을 맺을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있는지는 다른 질문이지만 우리는 이미 구원을 약속받은


하느님의 상속자들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환난 없이 없습니다. 모든이들 환난을 당하지만 어떤 이는 환난을 이겨내고 어떤 이는 환난 앞에서 좌절하고 도망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행복을 위해 자기를 버리며 사랑을 위해 가난해지고,  슬퍼하 , 온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들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갈등하고 있고 현실만을 쫓아 자기의 만족만을 고집하며 삽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이 어떤 곳일지, 거기에서 생활하는 어떤 생활일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 확인되지 않은 죽음 너머의 삶을 위해 많은 분들이


목숨을 치셨고, 우리 교회는 시성되지 못한 헤아릴 없이 많은 이름없는 성인들까지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거룩한 성인들의 날의 이브 (‘All Hallows Eve’ 줄어서 ‘Halloween’) 지낸 우리가 세상 너머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 훌륭한 모범의 살아내신 성인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도 삶을


지향하며  살아 삶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Happy Halloween to all!!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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