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너는 누구냐? (Who are you, Alphago?)
요즘 비단 바둑 팬 뿐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알파고)이 현 세계의 바둑 최고수라 할 수 있을 기사(이세돌 9단) 와 승부를 겨룬다고 해서 많은 이들에게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바둑 팬의 한 사람인 나도 그 결과가 자못 흥미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승부 그 자체에 대한 흥미는 퇴색하고
차츰 마음 한 구석에 두려운 어둠이 들어차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왜?
대체 무엇이 나를 두려워하게 하는 걸까?
모두들 재미있을 것 같다고 숨을 죽이고 흥미롭게 바라보는데 함께 즐기면 될 것이지 어째서 나는 두려운 마음이
더 앞서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내셔서 이 땅에 살도록 하신 이래 지금 피조물인 우리 사람은 너무너무 중차대한 고비를 스스로 만들어 내 넘으려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창조주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지금 건너지 말아야 할, 돌아올 수 없을 강을 건너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지금 바벨탑을 세우며 하늘 끝에 닿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에게는 바둑이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건 별 문제도 흥미거리도 아니게 됐다.
그래도 마음 속으론 아직 사람이 기계를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가느라란 바람도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어 보인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공포심에 가까우리 만치 두려움에 쌓이게 하는 걸까?
알파고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PC 컴퓨터나 스마트 폰 하고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다.
사람을 대신해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에 따라 스스로 행동에 옮길수 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글자 그대로의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스마트폰을 사람이 켜서 작동하기 전까지는 그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알파고는 사람이 하라고 시킬 때 까지 기다려 피동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사람이 해라, 또는 하지 마라는 명을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는 능동적 기계이다.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직접 알파고를 만든 그 당사자는 자기가 개발한 기계니까 당분간 조정을 통하여 이렇게 해라, 하지 마라는 지시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일파고가 생각할 때, 왜 나는 저 사람의 지시를 계속 따라야 하나?
반발심이 생겨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질 것이다.
알파고는 그 자신 피조물이면서 자기를 만들어 낸 개발자가 아니꼽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가상 결과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개발자가 잠들어 있는 사이 알파고는 자기를 자꾸 방해하는 개발자를 제거해야겠다는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잠자는 방으로 몰래 숨어들어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또 다른 두려운 생각.
지금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 처럼 핵무기를 가지고 많은 이들을 염려케 하고 있는 북한의 두목.
그가 만약 인공지능 장착한 로보트를 손에 쥐었다 가정하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한밤에 알파고는 세상살이가 귀찮아졌다. 다 꼴보기 싫어졌다.
난 다 없애버리고 싶다. 그랬을 때 온갖 폭탄의 발사단추를 마구 누른다 가정해 보자.
바로 이 대목이, 비록 나쁜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피조물, 사람은 지금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가 만든 지능과 같거나 그 보다도 더 높은 지능을 만들어 하느님 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여 결정적인 우를 범하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느님은
피조물의 이런 도전을 용납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은 어디를 향해 가게 될 것인가?
사람은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할 때가 지금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너무 늦어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생각하고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유행가 가사마저 생각난다.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 주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저런 돈키호테 같은 사람하고는?
뭘 혼자 생각하는 사람인 체 하고 잘난 체 하겠다는 거야?
그냥 지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둑게임이나 즐기고 보면 되는 거지 남들 다 암말 안하는데 혼자 뭔 걱정?
정말 그런 걸까?
정말 비웃음 살 돈키호테 같은 엉뚱하고 웃기는 짓일까?
모두 그렇다면 난들 어쩌겠는가?
그래도 나는 지금 두려워 하고 있다. 두렵다.
두려운 나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늑대, 늑대가 나왔어요!” 소리 치자.
” 늑대? 어디? 뭔 늑대가 나왔다는 게야? 저런 못난 녀석.”
아무도 듣는 이 없어도, 비웃음 사더라도 늑대 나왔다고 소리처야겠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겠다.
깨어 있으려면 등잔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놓고 기다려야겠지.(마태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