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의 Messenger 평신도
마라톤의 기원을 아시지요?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죽도록 뛰어 기쁜 소식을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근대 올림픽인 아테네 대회에서부터 정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답니다. 반면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은 마라톤을 아예 금지하고 있답니다.
요즈음 카카오 톡이라는 메신저를 많이 사용합니다. 미사 때나 모임 에서 "카톡, 카톡"하고 전화음이 들리는 것은 예사가 되었고, 대화나 친교를 위해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함께 하는 도중에도 옆의 사람에게 신경을 쓰기 보다는 전화기를 바라보는 일은 흔하디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Messenger-메신저’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사람을 뜻하는데, 카카오 톡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네트워크 서비스도 메신저라고 합니다. 곧 소식을 전해주는 이들 또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매체를 메신저라고 합니다.
소식(News)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전해들은 뉴스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대응을 합니다. 요즈음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도, 미국에서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의 소식도 메신저를 통해 듣게 됩니다. 이처럼 사건현장에는 없었지만, 메신저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소식은 무척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는 평신도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평신도인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Messenger-메신저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한다. 이는 특히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을 온전히 지키며 그 신앙에 대한 이해를 깊게하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 평신도이건 성직자이건 간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785항).
예언자직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선포하신 기쁜 소식 전하며 예수님께서 복음 자체이심을 전하는 이들이 예언자들이요, 기쁜 소식의 메신저라는 말씀입니다. 예언자직은 교회와 세상 안에서 사람들이 믿음을 온전히 지키게 하고 신앙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합니다. 사람들은 예언자인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고 듣고 또 이해하게 됩니다.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제2장에서 평신도 사도직의 목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제시합니다.
그 첫째는 복음화와 성화 사도직입니다.
“평신도들에게는 복음화와 성화 사도직을 수행할 기회가 무수히 열려 있다. 바로 그리스도교 생활의 증거와 초자연적 정신으로 실천하는 선행은 사람들을 하느님과 신앙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고 교령은 밝힙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웃에게 좋은 표양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일차적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고, 이것 역시 평신도 사도직의 한 목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사도직의 둘째 목표는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교화입니다. 교령은 “현대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과신한 나머지 현세 사물을 우상처럼 섬기며,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가 되어 버렸다.”(7)고 진단하면서 “사람들이 현세 질서를 바로 세우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는 것이 온 교회의 임무”이며, 특히 평신도들은 목자들의 영성적 도움을 받아 현세 질서의 개선을 추구하며, 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확고하게 바로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7). 현세의 질서를 개선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정치가 가 되자는 말은 아니겠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세상의 등이 되어 참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라 교회는 밝힙니다.
평신도 사도직의 셋째 목표는 사랑의 실천으로서, 그 가운데 특히 자선은 사랑의 생생한 표현이자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교령은 “다 른 사람들의 자선 활동을 기뻐하면서도 자선 활동이 남에게 넘길 수 없는 자신의 의무이며 권리”라고 지적하고,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이웃으로부터 하느님의 모습과 예수님을 보아야 하며 그렇기에 사랑의 실천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리추구와 지배욕에 대해 경고도 잊지 않습니다.(8). 요약해서 말한다면, 1. 세상 한 가운데서 복음 소리 내어 전하고, 2. 우리 사회가 더 복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방으로 나아가도록 애쓰며, 3. 어려운 이웃을 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 세 가지를 통해 평신도는 자기가 주님께 받은 거룩한 직책을 수행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교령이 언급하는 평신도 사도직의 첫 번째 영역은 본당 공동체입니다. 10항은 “본당은 그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인간적 다양성을 하나로 모아, 이를 교회의 보편성에 융합시킨다. 평신도들은 … 인간 구원에 관련되는 문제들은 물론, 자신과 세상의 문제들을 교회 공동체에 들고 와서 함께 논의하고 연구하고 해결하여야 한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본당은 행정적인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사도직의 전초 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령은 본당 교우들이 “자기 목자의 부름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교구 사업에 자신의 역량을 바칠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사도직의 둘째 영역은 바로 가정입니다. “만물의 창조주께서 부부 공동체를 인간 사회의 원천과 기초로 삼으시고, 또 당신 은총으로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큰 성사가 되게 하셨으므로” 부부가 된다는 것, 부모 노릇을 하고 자녀 노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도직 입니다.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기도하며, 바로 교회의 가정 성소가 될 때에, 가정은 그 사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온 가족이 교회의 전례에 참여할 때에, 그리고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며, 어려운 모든 형제의 요구에 봉사하는 정의와 다른 선업을 증진할 때에 가정은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11)라고 공의회는 가르칩니다.
승전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었던 전령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기쁜 소식의 메신저였습니다. 우리가 교회와 가정 공동체 안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어 전해야 하는 기쁜 소식이 무엇일지 오늘 평신도 주일에 교회는 묻고 있습니다.
김 두진(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