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너라.

 

 

 

 오늘 교회는 연중 제3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어떻게 실현됐는지를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로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빛 속에 살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늘 나라에 좀 더 가까이’(마태 4,17 참조)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네 명의 어부를 제자로 삼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는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 신앙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권위 있게 생각하는 문서는 구약성서입니다. 따라서 이 복음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중요한 일마다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그것이 하느님이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하느님이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였습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1, 14)고 간단히 언급하는 반면, 마태오복음서는 우리가 제1독서로 들은 이사야서(8, 23)를 길게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한 것은 이사야 예언서에 이미 예언된 일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즈블론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라는 긴 지명(地名)이 그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어둠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신 사실을 알리면서 모세가 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그 사실을 의식하고 사는 백성에게 필요한 그 시대의 지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율법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율법을 인간의 우열(優劣)을 가리는 도구 내지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인은 하느님이 자비하시기에 자기도 그 자비를 실천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자기도 모두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부르시자 ‘곧 바로 그물을 버리고’ 혹은 ‘곧 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주저하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이 예수님이 부르시자 제자들은 ‘곧 버리고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배와 그물과 아버지를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 안에 하느님의 빛을 보고, 주저도, 망설임도 없이 그분을 따라 나서서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들이 예수님을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생각하며 살던 우리 역사의 어둠 안에 자비롭고 베푸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예수님이 빛과 같이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실천하여, 우리도 그분의 제자 되어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업이 무엇이든,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이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각하고 그분의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의지하였던 이기심(利己心)의 배와 욕심의 그물을 버리고, 출신과 가문(家門)을 의미하는 아버지도 떠나서, 예수님 안에서 깨달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며 사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보는 어둠을 버리고, 예수님의 빛을 받아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 되어, 참으로 자유롭게 살라는 복음의 초대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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