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우신 하느님
저의 부모님은 가난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못하셨습니다. 두 분이 돌아가신 곳도 형님집이였으니 말 그대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셨습니다. 돈 많은 아버지를 둔 이들이 가끔 부러운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음대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들이 어린 마음에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버님이 늙어갈수록 그분의 상속을 더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고 원수처럼 되는 경우를 보면서. 아버지의 뜻은 저게 아닐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이 아니라 원수처럼 살게 됨을 보면서 마음이 씁쓸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늘 복음은 상속자를 죽이고 그가 받을 상속을 뺏으려는 이들의 이야기 입니다. 포도밭과 관련된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 -지난주일 복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누가 그분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다 지도층(21,23)을 대상으로 예수님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들은 우리가 짐작한 대로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밭을 경작하도록 부름 받은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이 됩니다. 주인이 파견한 ‘종’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들입니다. 상속권을 노리는 소작인들에 의해 ‘포도원 밖으로 던져져’(39) 죽임을 당한 ‘아들’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형을 당해 죽은 예수님이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밭을 다시 맡길 ‘다른 백성’ 은 이방인들로 등장합니다.
먼저 첫 단락(21,3341)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분은 포도밭에 대한 이사야서 본문을 암시하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제1독서 참조) 종들을 파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들을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하느님의 종인 예언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는 그들의 굳은 마음을 돌리시고자 하느님은 마지막 순간에 당신 아들을 보내십니다.(37) 그 아들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분이고(갈라 3,16), 이미 성경에 오시리라고 기록된 분이셨습니다. (로마 1,34) 하느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상속자’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갈라 4,7)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큰 사랑인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은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히브 13,12) 받게 하셨습니다.
둘째 단락에서(마태 21,42-46) 예수님은 당신 자신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교회의 머리, 모퉁이의 머릿돌’(42절 참조)이 되신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도 성령강림 후 오순절 설교(사도 2,1436)에서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는 것을 대담하게 선포합니다.(사도 2,33-36)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시편 118, 22-23) 풀어보자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였지만, 그분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머릿돌, 곧 그 백성이 형성되는데 기초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발생한 그리스도 신앙이고, 그 신앙으로 인해 생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입니다. 이 복음은 포도밭 주인에게 악하게 행동한 소작인들처럼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에게 충실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잘못으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잃었고, 그들이 버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긴 새로운 신앙공동체, 곧 그리스도 교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유다인과 이방인을 신앙에로 부르시어 평화의 은총으로 일치시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기에 과연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에페 2,14)
오늘복음에서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21,43)라고 하십니다. 유대교가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고, 버리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을 자비로운 아버지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 굶주리는 이, 우는 이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축복 선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짐진 여러분은 모두 나에게로 오시오.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마태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율법과 제물봉헌만 고집하던 율사와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은 “무겁고 힘겨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 어깨에 지우고 자신은 그것을 나르는데 손가락 하나 대려 하지 않는다.”(마태 23,4)고 비난하셨습니다. 율사와 바리사이들은 율법과 제사에 대한 과거의 율법에만 집착하고,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복음 말씀을 통해 그분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들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1베드 2,45 참조)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여”(필리 4,8) 주님 포도밭에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실효성있게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기대하시는 소출을 잘 내는 백성이 되는 길입니다. 상속자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림으로 하느님 나라를 뺏는 폭력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를 살아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제 때에 소출을 바치는 것입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