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십계명 그리고 선교 바자회
"행복이 무엇인가?" 우리 인생에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아르헨티나 주간지 비바와의 인터뷰에서 행복의 십계명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1.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되,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라. 2.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 3. 고요히 전진하라. 4. 건강하게 쉬어 라. 5.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 6. 젊은 세대에 품위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으라. 7. 자연을 존중하 고 돌보라. 8.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 9. 타인을 개종하려 하지 말고 다른이의 신앙을 존중하라. 10. 평화를 위해 일하라.
선교 바자회를 하는 주일에 "9.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라."는 말씀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선교는 무엇인가를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간단하게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모든 일 가운데 최악은 개종이다. 교회는 개종이 아니라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통해 사람들이 동참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신앙생활의 매력을 세상에 보여줌으로 더 많은 이들이 우리가 펼치는 신앙운동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라 해석됩니다.
이번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바리사이들이 모여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늘 예수님께 부정적이었던 바리사이들은 더 곤란한 질문으로 그들의 악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교황님은 행복의 십계명 8 번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다는 뜻이다. 이는 ‘나 자신이 너무 비천하므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릴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부정적인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이기고야 말겠다는 집념의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자존감까지 버리면서 예수님을 옭아맬 질문을 만들어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7)고 하십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모든 유다인이 아침 저녁으로 외워야 하는 기도문의 일부입니다. "셔마(Shema)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아 들어라!" 로 시작하는 이 기도문은 모든 유다인들이 실천해야 하는 계약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지켜야할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그분에게 봉사하는 것,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까지 포함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살찌고 기름진 번제물을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 호세아서는 말합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호세 6,6)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각은 그분께서 우리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서 뿐 아니라 ‘사건’ 안에서도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애에 일어나는 ‘사건’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신호’입 니다. 성경에서 보면 마리아는 구유에 누운 갓난아기를 찾아온 목자들과(루카 2,819) 열 두살의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잃으셨던 사건(루카2,4151)을 통해 하느님께 귀기울이셨고 예수님과 당신 생애의 의미를 찾아내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박해의 길에서 주님을 만난 ‘사건’에 귀 기울이고 평생 이‘사건’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아버지의 사랑을 선교 사도직의 모토로 삼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바오로처럼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 2,20)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중계명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자들" 곧 구약 계율의 집약이며 기준이라고 합니다. (17)
이번 선교바자회는 멕시코의 지진피해를 입은 형제자매들을 위한 것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본적도 없는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누려는 땀입니다.
바자회를 준비하는 일주일 내내 성당이 시끄러웠습니다.
비내리던 주일에 무와 배추를 실어 나르던 사목위원들, 본당 수녀님, 많은 형제자매들,….. 질척한 비가 내려도 아랑곳 없이 일하며 흘린 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흘린 사랑의 땀이였고, 자연재해로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교회의 매력을 전하려는 이웃사랑이었습니다. 화요일엔 하루종일 비가 왔지만, 왁자지껄 웃으며 함께 일하던 모습은 초대교회의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은 내어 놓는 일치의 잔치였습니다. 다리와 팔을 다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아 죄송스러웠지만 그만큼 더 감사했습니다. 선교바자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땀의 선교를 실천했고 행복의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선교 바자회를 준비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함께 일하지 못했지만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들의 아픔에 교회의 매력을 보여 주신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무기농의 많은 양의 무와 배추를 선뜻 내주신 분도 계시고,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선교 헌금을 내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매력이 이웃들에게 전해질 때 교회는 건강해지고 또 성장하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아니 교황님 말씀처럼 행복하게 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하던 노래가 무색할 정도로 준비하는 기간 내내 행복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라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그저 말로만이 아닌 실천하는 공동체였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랑 안에서 행복을 찾는 공동체!
감사합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교우여러분!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