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과 사랑의 등불
세상의 종말은 언제가 될까요? 그 시기와 때는 하느님만 아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지만, 거짓 예언자들이나 신흥종교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를 들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도 많습니다. 휴거 그리고 2000년이 시작 될 무렵 이른바 Y2K로 세상의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 얼마나 겁을 주었습니까? 또 인터넷에서는 2017년 9월 23일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떠들었습니다. ‘니비루 (Nibiru)’라는 ‘X 행성 (Planet X)’이 9월 23일 지구와 충돌해 세상의 끝이 찾아온다고 했지만 이 또한 허구였습니다.
“그때에”(마태 25,1)로 시작되는 오늘의 말씀은 미래에 닥칠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시리라는 기대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림이 지연되자 혼란과 갈등을 겪습니다.(1테살 4,1314; 마태 24,23 28 참조) 마태오는 종말 심판설교(2425장)를 전하며 반드시 ‘종말은 오겠지만 그때는 모르니 깨어 있으라.’(24,3225,30)는 말씀으로 종말의 지연을 말합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전체는 열 처녀의 비유말씀과 달란트 비유말씀 그리고 최후심판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 복음은 마태오복음 25장의 첫 번째의 비유의 말씀으로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혼인을 맺는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신랑을 하느님, 신부는 이스라엘을 가 리키는 은유로 나타납니다. (호세 2,18; 3,1;이사54,5-8;62,4-5;에제16, 7-8) 신약성서에서도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는 신부로 가리키는 은유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교회를 뜻하는 은유가 신부 대신 신부의 여자친구(들러리)로 묘사 됩니다.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25,1)는 ‘어리석은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입니다.(2)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했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만 준비 했습니다. 여기서 슬기로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마태 7, 2427참조) 이와는 반대로 등만 준비한 처녀들은 즉 듣기는 하 는데 (등) 실천이 없다(빛을 채워 줄 기름)는 뜻으로 해석 됩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던’ 열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는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56) ‘한밤중’은 어둠이 가장 깊을 때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늦은 시각임을 말하며, 새벽(새날)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7) 밤새 켜 두었던 등불이 꺼져갑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은 마치 이 세상의 처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 다. (24) 어리석은 사람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허겁지겁 준비하는 사람들이고 슬기로운 사람들은 미리,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슬기로운 처녀들은 한밤중에 들이닥친 신랑의 발걸음을 등불로 밝히며 혼인 잔치에 들어갔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허둥지둥 기름을
사러간 사이 문은 닫혔습니다. (1011) 신약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하느님 나라와 직결되는 구원의 사건이며 (22,114) 앞서 언급한대로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마태 9,15; 요한 3,29; 2코린 11,2) 오늘 복음에서 슬기로운 처녀들은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 사람들의 모습이며, 닫힌 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은 처녀들은 준비되지 않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마태 25,11)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처녀들에게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12)는 말씀은,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7,2123)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즉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이 여기서는 알고 모름의 차이가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꺼져가는 등불을 바라보며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달라.”(25,8)고 청했음에도 그 부탁을 거절한 이유는 기름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실인지라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6,1921.24.33 참조) 꼭 바쁘고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져 허둥대는 것처럼 어리석은 처녀들이 저지른 실수는 필요한 때와 장소에서 밝혀야 할 사랑의 등불을 켜지 못한 자기만족 이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하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밝혀 주어야할 사랑의 등불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지요.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5,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예 수님의 재림이 언제인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지만, 주님의 뜻을 따라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며 사랑의 불을 밝히는 사람들 이어야 합니다. (마태 25,13)
많은 신자들이 내게 담배를 끊으라 하십니다. 그 때마다 '내일부터'라고 받아 넘기는 자신을 보면서 중요한 결정 앞에서도 주저거리며 '내일부터'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지금'과 '내일부터'는 (오늘 복음의 관점으로 본다면)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을 가르는 말씀입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 하지 못한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처럼 주님을 맞이할 등을 준비하고도 (말씀을 듣고도)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는 (실천 해야 할 사랑을 내일로 미루며) 어리석음을 사는지 '지금 여기서' 되돌아봐야겠습니다.
위령성월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례력이 시작되는 대림을 2주 남기고 있습니다. 밖에는 이미 성탄과 연말을 핑계로 흥청거릴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에,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밝혀야 할 사랑의 등불과 손을 내밀어 밝힐 기름이 충분한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하십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