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버셨습니까?

 

 

 

 

 

얼마나 버셨습니까?

 

 

이란에서 지진이 났습니다. 530여명이 천재지변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국의 포항에서도 지진이 났습니다.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시험인 수능시험도 일주일 연기 되었다고 하니 수험생들은 긴장의 일주일 더 보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혹시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것은 아닌가 하며 불안해하실 분이 계실까 제가 두렵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분명 오지만 이렇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느님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했으니 예수님 재림의 시기는 아니지 싶습니다.

 

종말 심판설교(마태 24­25장)에서 인자의 내림(24,29­31)과 최후의 심판(25,31­46)은 서로 직결되는 이야기입니다. 마태오는 두 이야기 사이에 ‘종말은 오겠지만 그때는 모르니 깨어있으 라.’(24,32­25, 30)는 단락을 삽입하며 종말의 지연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 25장에서는 두 편의 비유말씀이 있습니다. 지난주 들었던 ‘열 처녀의 비유’,와 오늘 듣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Talent(탈렌트)라는 말은 재능을 뜻하기도 하고 또 우리말 에서는 텔레비전에서 활약하는 연예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달란트는 돈의 가치입니다. 한 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이며 1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6천일 동안 일한다면 쉬는 날 없이 16년을 넘게 일해야 합니다. 다섯이나 둘, 그리고 한 달란트는 종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큰 금액입니 다. 주인이 종들에게 그런 거금을 맡기는 일은 있을 수 없을 일이며 만약 있다하더라고 전무후무할 만큼 드문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 비유는 특수한 예의 비유이기에 여기에  숨겨진 의도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25,14)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선물(은총)이며 과제(요청)라는 의미입니다. 첫째와 둘째 종은 주인이 맡긴 돈을 활용하여 큰돈을 벌어들입니다. 매우 생산 적입니다. 즉

주인에 대한 믿음의 결과입니다. 이와는 달리 셋째 종은 주인이 맡긴 돈을 안전하게 보관만 합니다. 비생산적이기도 하고 주인에 대한 믿음도 없습니다. 달란트를 단순히 재화, 재능, 소질로 이해한다면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종에 대한 주인의 신뢰에 근거하여 본다면, 종의 ‘믿음과 충실성’ 이 요구됩니다. (19) 비록 여행이 지체될지라도 ‘오랜 뒤에  주인이 와서 종들에게 맡긴 소유에 따른 셈을 할 것이며’(19), 주인에 대한 종의 충실성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맡겨진 탈렌트를 어떻게 활용했느냐’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5)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19) 는 말씀은 예수님이 이승을 떠나신 때부터 종말에 재림하실 때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뜻으로 마태오는 종말 임박설보다 종말 지연설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첫째 종과 둘째 종은 달란트를 받고 지체함 없이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받은 돈의 두 배로 벌어들입니다. (16­17)

주인은 그들을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 부르며 그들의 수고를 “작은 일에 성실하였다.”고 합니다.(21) 그 종들은 “와서 네 주 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21과23절) 종말론적인 축복을 받으며 더 이상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지위 상승으로 인해 주인의 친구로 격상됩니다. (요한 15,15­16 참조)

 

또한 다섯 달란트를 번 종이나 두 달란트를 번 종은 똑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이런 주인의 똑같은 상급과 칭찬은 돈을 얼마나 벌어들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몇 달란트를 받았는가' 보다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어떤 철학자가 말 했듯 사회적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하느님께로 부터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제각기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창의력 넘치게 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비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기는데”(마태 25,18) 이유가 매우 불순합니다. 주인을 모진사람으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분이라고 확신합니다. 그에게 맡겨진 달란트는 스스로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주인님의 달란트” (25) 였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생산적인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생산적인 일 대신 주인의 됨됨이를 따져 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모진 부자라는 결론까지 내립니다. 따라서 셋째 종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며 자기들이 이해한 주인의 뜻대로도 행하지 않는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쓸모없는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져, 거기서 울고 이를 갈수 밖에 없는” 고통의 장소로 내던져집니다. (26­30절)

 

주인은 셋째 종이 가지고 있던 달란트를 “빼앗으라.”고 명령합니다.(28)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는…” 말씀에서 수해자가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서 누구든지로 바뀝니다. (29) 그렇다면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성서에서도 말하고 있는 걸까요? 마태오는 이런 사실을 영성적으로 풀이하여 지금 영적인 부를 쌓은 사람은 종말에 더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종말에 더 초라해 질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의 달란트를 받았습니까?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얼마나 생산적으로 살아갑니까? 영적인 표현으로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갑니까? 연중 33주일을 지내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을 일주일을 앞에 두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회력의 마지막 즈음에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나는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릴 그분의 친구가 될까,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될까?

그나저나 하느님께 받은 달란트로  얼마나 버십니까?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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