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축일에….
오늘은 세례자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특이하게도 두 번의 축일을 지내는데, 한번은 예수님과 성모님처럼 탄생축일을 지내고 두 번째 축일은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세례자요한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연결하는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예언자의 역할을 말하는 것은 세상에 하느님의 약속, 구원자 예수께서 오실 것을 알리는 역할을 한 분이기에 세례자 요한이 마지막 예언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기적적인 탄생이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제사장이었고, 아내는 엘리사벳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제관들은 24개조로 편성이 되어 한 주간씩 돌아가며 성전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당대에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관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합쳐 이만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오후에 두 차례 정기적 제사를 지냅니다. 각 조마다 제관이 수백명에 달했기 때문에 제관들 대부분은 그냥 참관만 하고 제비를 뽑아 당첨된 제관들만이 제례를 주관합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바치는 제관, 기름으로 반죽한 밀가루와 포도주를 바치는 제관, 분향할 제관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분향은 가장 영광스럽게 여기는 제관의 직무였습니다. 만일 어느 제관이 당첨되어 한 번 분향하면 자기조의 제관이 모두 분향할 때까지는 분향 제비를 뽑일 차례를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제관들은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분향하는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은혜롭게 분향제비에 당첨되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즈카르야는 자기가 아들을 가질 수 있다는 천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 엘 리사벳과 남편 즈가리야 모두 늙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지 못하던 즈카르야는 세례자 요한이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됩니다. (루카 1,20).
때가 되자 하느님의 축복으로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아이가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안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는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루카 1,14-16).
이렇게 되어 요한은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루카 1,17).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 태중에서 이미 마리아의 태중에 있던 예수님과 만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그 '태중에서 요한은 주님과의 상봉을 알아차리고 기뻐 뛰놀았다'고 루카복음은 전합니다. (1,41). 그는 서기 28년경 이사야 예언자와 엘리야 예언자의 정신을 지닌 예언자로 광야에서 살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요한의 세례는 삶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고, 세리는 정해진 세금 외에 더 걷지말아야 하며, 군인들은 사람을 괴롭히거나 등쳐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루가 3,10-14). 예수님은 요한이 요구한 것들보다 더 깊게,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하시며, “말씀을 듣고 실천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7,24)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세리와 창녀들이 사제나 백성의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 31)고도 말씀하셨으며, 요한이 세례에서 요구한 실천들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요한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입니다. 회개를 요구하는 요한의 설교는 대단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독사의 족속! 닥쳐올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 라고 누가 일러주었느냐?”(마태 3,7),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다.”(10). 요한의 이런 표현들은 구약성서의 두려운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아버지이시며, 하느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루가복음서에 잃었던 아들의 비유(15, 11-31)서 처럼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떠나가 재산을 탕진하고, 탕아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기쁘게 맞이하며, 그를 아들로 복권시키는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마태 18,22)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 사랑하시는 분,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 또한 특이합니다. 어느 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헤로데의 생일날에 춤을 추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헤로데가 가진 것의 절반이라도 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헤로데에게 자기가 춘 춤 값으로 요한의 목을 요구합니다. 결국 요한은 갇혀 있던 사해 동쪽에 있던 감옥 안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게 됩니다. 결국 이 슬픈 죽음은 간음을 저지른 여인과 춤을 춘 그의 딸, 내연관계를 가진 남자의 악하고 약한 마음 때문에 일어 났습니다. 헤로데처럼 가지 권위에 도취해서 사는 사람들은 요한의 부활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헤로데와 많은 사람들이 요한이 부활하여 다시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 탄생축일을 지내는 분은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세례 자 요한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셨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가르친 요한의 탄생은 하느님의 은총을 말하고 있고, 말씀을 실천하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