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연중 17주일 (나해) 요한 6,1-15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있겠느냐?”                                

 

 

오늘부터 앞으로 5주 동안 연이어 교회는 주일 미사 복음으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에 관한 말씀인 요한 복음 6장을 듣는다. 오늘 주일 복음은 그 첫 단락이다.

예수께서 하셨던 빵의 기적은 목격자들에게 대단히 강한 인상을 남겨 놓았던 것 같다. 네 복음서가 모두 전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두 번씩이나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요한 복음 6장 전체에 관해 잠깐 살펴보고 이어서 오늘 듣는 복음 말씀에 관해 묵상하고자 한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 복음서는 ‘빵을 많게 하신 기적’에 이어 이 기적(‘표징’)의 의미에 대하여 말해주는 예수님의 긴 말씀을 함께 전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 복음 6장에는 그 첫 단락과 끝 단락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질문이 나오는데 이 두 질문은 이 요한 복음 6장 전체의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첫 질문은 필립보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사올 수 있겠느냐?”(5절)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열두 제자 전체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67절). 그리고 이 두 질문 사이에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마치 대답처럼 놓여 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요한 복음서에 의한 ‘빵의 기적’의 초점은 바로 이 대답에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독자들이 바로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서 있게 하고자 한다.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기적들’은 ‘예수가 진정 누구이신지’를 가리켜주는 ‘표징들’이다. 예컨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빵을 많게 하시어 수많은 사람의 배고픔을 채워주신 ‘기적’은 그분이 ‘참 생명’이시라는 것을 가리키는 ‘표징’이다.

그러기에 이 기적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예수께서 그 많은 군중의 육체적 배고픔을 기적적으로 채워주실 만큼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과시하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도는 오늘 복음의 끝에 나오는 ‘군중을 피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체험하자 군중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줄 메시아-왕이 나타났다고 확신하여 예수님을 강제로라도 왕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군중을 피해 혼자서 다시 산으로 가신다.

예수님은 외적인 권세와 영화를 누리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셨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후반부가 잘 증거 하듯이, 그분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메시아’이시다. 그러나 군중은 그러한 분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면,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필립보 사이에 오가는 문답을 더 깊이 묵상하자.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사올 수 있겠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필립보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필립보의 이 대답은 제자들은 그 많은 군중의 허기를 채울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안드레아도 말합니다:“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에는 작은 믿음을 환히 밝혀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란 어떤 아이가 보리 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다가 그것을 내어 놓는 이야기이다. 그 어린이가 갖고 있던 것은 그 많은 군중이 배불리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을 주님의 손에 내어놓자, 예수님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시어 그 많은 군중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많게 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무에서 시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어린아이가 내어놓은 그 작은 것을 가지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가르치시려는 깊은 의도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을 통하여 오늘날에도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악이 존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심지어 굶주려 죽어 가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필립보와 안드레아를 통해 대변되는 제자들의 하소연은 세상의 엄청난 문제를 대면하며 “이 작은 것으로 무슨 일을 하겠어?”하며 용기를 잃고 있는 오늘의 우리 교회의 모습, 아니 우리 각자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사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그 많은 세상의 고통과 악을 대면하면서 우리 자신의 능력(우리의 소유, 우리의 시간, 우리의 지식, 우리의 건강)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도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우리의 부족함만을 탓하며 뒷걸음을 치게 될 것이다. 눈을 들어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손에 봉헌하라고 초대한다.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위하여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었지만 제자들의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는 전부였던 그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선물(봉헌물)이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기적의 촉매역할을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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