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수군 쑥덕쑥덕
우리는 지난 2주에 걸쳐 생명의 빵의 의미에 대해 요한복음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그만큼 성체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그렇게 살아내기가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광주리가 12광주리였음에도 그들은 아직 표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표징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수군거립니다. “수군거린다." 는 표현은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의 수군거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가족을 들춰내며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저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고 또 자기가 하느님이 보내신 생명의 빵이 될 수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그들의 불신을 드러내며 수군거립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는 죽어가는 엘리야를 먹여 살리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진맥진한 엘리야는 하느님께 죽기를 청하지만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물과 빵을 주고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게 함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당도하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우리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야 시대는 아합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합은 그 이전의 어떤 임금보다 더 주님의 눈에 그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왕이었습니다.(열왕기상 16,30) 이방인이었던 이제벨과 결혼하고 바알을 섬기며 예배하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바 대로 열왕기에서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대적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거짓예언자들을 죽입니다. 또한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큰 기근이 들어 어려울 때 가뭄이 끝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며 나라를 구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이름을 높혔음에도 바알을 숭배하던 왕비 이제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이제벨의 분노를 피해 그곳을 도망치지만, 엘리야는 배고픔과 피곤에 죽을 지경이 됩니다. 절망의 깊음 속에서 하느님께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청을 드리고 피곤에 지쳐 잠이 듭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고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먹고 마시고 다시 피곤에 찌든 상태로 잠을 자고 있는데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음에도 가끔 세상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어도 어떤 이웃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혹은 교회에 열심히 봉사를 해도 어떤 때는 알아주는 이 없이 고통만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너무 괴로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 하느님께 울부짖어도 어떤 때는 응답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서운 고독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만이 음식의 고마움을 알 수 있듯, 절망의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희망의 기쁨을 알 수 있듯, 엘리야처럼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람이 삶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통이나 우리의 절망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엘리야의 태도에서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준비한 빵과 물로 인해 힘을 얻은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당도하는 것처럼 우리도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으로 하느님의 산 호렙 즉 영원한 나라에 당도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는 말씀을 믿으려면 우리가 그 성체에 굶주려 있고 성혈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체에 굶주려있고 성혈에 목말라 있는지를 알려면 우리의 가난을 들춰내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게 얼마나 좋으신 분이시고 또 얼마나 필요한 분이신지를 알려면 우리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우리의 비참함을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인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나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체를 잘못 모시면서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통해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오늘의 2독서 참조)
이렇게 풀어 읽은 말씀을 좀 더 더 풀어 읽습니다. "저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면서도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해서 저는 영적으로 가난합니다. 그분의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마시면서도 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 놓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사랑 안에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해서 저는 영적으로 비참합니다. 해서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 합당치 않은 사람”이기에 오히려 그분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저희의 영적 가난을 이해하시고 저희의 비참을 알아주시니 저희에게 생명의 빵으로 다가오시어 저희의 영혼을 깨끗이 하시고 저희를 온전하게 하소서.”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 수군거리며 쑥덕거리며 불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성체에 굶주리고, 성혈에 목말라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내야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이라 오늘 복음은 우리게 말하고 있습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