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의 감격을 기억하며
오늘은 주님이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을 기념하는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심을 기억하는 것은 그 사실을 전하는 이야기들 안에 초기 신앙인들의 믿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 하나가 예수님이 세례 받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에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세례운동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만이 세례를 준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다양하게 세례운동을 펼쳤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즉, 요한의 세례운동에 예수님이 가담하신 것입니다. 그 시대 다른 세례운동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정결례였다면, 요한의 것은 죄를 씻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의례였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심판이 가까웠다고 말하면서, 회개하여 올바르게 살 것을 약속하는 세례 운동을 펼쳤습니다. 요한은 유대교의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앞에 우리의 삶을 바꾸어 올바르게 살자고 외치던 이스라엘의 예언자였습니다.
네 개의 복음서가 모두 예수님이 세례 받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들은 그 사실을 전하며, 초기 신앙인들이 믿고 있던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동시에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주님이신 것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예수님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 있게 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지만, 회개하여 올바르게 살라는 요한의 교훈을 계승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삶 안에 하느님의 숨결, 곧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갈등으로 목숨을 잃기까지 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그분의 생각이 그들의 것과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제1독서에서 들은 이사야 예언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초기 신앙인들에게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아버지의 후광으로 사람들에게 군림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말씀하시며 섬기는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이 당신 마음에 들어 선택하신 종이셨습니다.
이사야서는 계속 말합니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리라.’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가르쳤지만, 그분은 목소리를 높여 외치며 사람들에게 군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벌주신다고 사람들을 위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성전 의례를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몇 명 되지도 않는 제자들을 모아서 초라하게 또 조용하게 가르치면서, 하느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일을 스스로 실천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의 용서를 몸소 실천하셨으니, 과연 그분은 하느님의 영을 받들어 사는 종이셨습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유대교 지도자들이 죄인으로 단죄하여 부러트려놓은 약자들을 예수님은 꺾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아버지라는 확신과 희망을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셨습니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병이 있어서 꺼져가는 생명들을 절망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고쳐서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그런 실천들 안에 하느님의 영이 하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른 것은 성령이 그분 안에 계셨고, 그분의 삶이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었으며, 그분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 되어 그분의 생명을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우리의 숨결로 삼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세례 받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외치지말고 소리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하느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외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씀대로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꺾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좌절한 사람, 실패한 사람,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심지가 꺼져 간다고 등불을 꺼 버리지 않고 “지극히 작은 내 형제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꺼져가는 생명들 안에 주님이신 예수님을 보고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구원을 보증받는 증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종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거룩함에 동참한 우리도 주님이 하셨던 일들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의 감격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김두진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