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제 3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은 하느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 말하기 위해 마태오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합니다. 마르코는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1, 14)고 간단히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마태오는 이사야서(8, 23)를 길게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것은 구약성서가 이미 예언 것이였다고 설명합니다. ‘즈블론과 납탙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 들의 갈릴래아’라는 긴 지명으로 시작하는 구절인데 이는 요셉이 유다에 정착하기 두려워 갈릴래아로 가서 나자렛에 정착함으로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와 매우 흡사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는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 신앙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권위 있게 생각하는 문서는 구약성경이기에 이 복음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중요한 일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하신 일은 하느님이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요한이 인기를 이용하여 정치적 흑심을 품을세라 그를 체포하여 사해 동쪽 천연요새 마캐루스에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합니다. 요한이 체포된 것을 넘겨졌다라고 표현 하는데 (paradidomi) 예수님이 체포되신 것도 넘겨졌다고 표현합니다. 이 파라디도미란 말은 요한과 예수님의 체포를 언급하거나 고난을 다룰 때 사용되는 다소 전문적인 용어입니다. 이미 복음의 서두에서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실 지를 미리 알려줍니다.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 오늘 복음의 두 번째 말씀은 오늘 짧은 독서를 읽어서 읽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네 명의 어부를 제자로 삼으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도 같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는 말씀은 메시아가 장차 오실 것을 말하는 이사야서의 구절입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에게 빛을 주는 일이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을 어둠 속에 주어진 빛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다른 복음서들 안에서도 확인됩니다. 루까복음이나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서(1, 4)는 그 서론에서 말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초기 신앙인 들에게 예수님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어둠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모세가 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그분을 인간 안에 살아계시게 하는 데에 필요한 지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율법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율법을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도구,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제사의례는 사람들을 어둠 속을 헤매게 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물이었습니다. 인간이 자기 노동의 대가로 얻은 것을 성전에 가져와 제물로 바치는 것은, 하느님의 시선이 그 제물 위에 내려오게 하여, 자기가 얻은 것을 하느님의 빛으로 새롭게 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자기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둠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빛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새롭게 보도록 하는 의례였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사제들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제물 봉헌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여 자기들이 풍요롭게 사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성전의 제물 봉헌을 폐기하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제사가 그 본연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빛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사람들을 살게 하는 율법과 제물 봉헌이 되도록 하려는 뜻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람들을 단죄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자비의 빛을 받아 그 자비를 실천하며 살게 하는 지침이 되어야 했고, 제물 봉헌은 인간이 노동하여 얻은 것을 하느님의 자비의 빛으로 조명되어, 이웃과 자유롭게 나누도록 초대하는 의례가 되어야 했습니다.
인간이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어둠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족 외, 모두를 외면하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자기 주변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인은 하느님이 자비로우시기에 그 자비를 실천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어떤 이유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비난하고 성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둠속을 헤매는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말은 사람들 에게 기쁨이고 행복이라야 합니다. 복음서들이 예수님을 빛이 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만 소중히 생각하며 사는 우리 역사의 어둠 안에 자비롭고 베푸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예수님이시라는 뜻이며, 예수님이 하신 일을 배우고 실천하여 우리도 그분의 제자 가 되어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각하고 그분의 자비를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의지하였던 이기심의 배와 욕심의 그물을 버리고, 출신과 가문을 의미하는 아버지도 떠나서, 예수님 안에서 깨달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며 사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보는 어둠을 버리고 예수님의 빛을 받아 참으로 자유롭게 살라는 초대입니다.
김두진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