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5천명을 넘어 6천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하루가 다르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확진자가 될지 걱정이 많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이제는 안전한 나라가 없을 정도로 온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감염되고 있습니다. 안전하다던 미국에서도 5명이나 사망했고, 일리노이 주에서도 감염자가 생겼습니다. 특히 우리 공동체는 한국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많으니 더욱 조심해야 겠습니다.
해서 주보에 공지되지만 여기서도 말씀드립니다.
1. 한국이나 이태리 뿐 아니라 비행기로 여행을 다녀오신 분은 14일 동안 자가 격리 후 성당에 오십시오,
2. 기침, 발열, 오한등 감기 증상이나 독감 증상이
있으신 분은 완치 된 후에 성당에 오십시오.
1, 2의 경우 성당에 못 왔다고 고해성사를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애덕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3. 3월과 4월 모든 단체는 활동하지 않습니다. 레지오, 울뜨레아, 성가대, 그 밖에 연령별 단체모임도 없습니다.
4. 성당이나 성당에 관련된 일로 단체 식사는 없습니다. 토요일 주일학교나 한국학교, 주일 식사 모두 취소합니다. 행여 개인 집에서 하는 단체 식사도 성당의 단체 이름으로 하는 것은 모두 금지합니다.
전례 안에서
1. 모든 전례 봉사자들은 전례봉사를 하기 전에 손세정제로 손을 닦아야 합니다. (본당신부 포함)
2. 주의 기도 때에 노래로 하지 않고 손을 잡지 않습니다.
3. 평화의 인사 때에 목례로 합니다.
4. 양형 영성체는 당분간 없습니다. 영성체송을 한 다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면 모두 “아멘”으로 응답한 후 영성체를 합니다. 위의 사항은 우리 신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감염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오니 손을 자주 씻으시며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그분의 지독한 고통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전개될 예루살렘을 향하는 여행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첫 번째 예고 (마태 16, 21-23)와 두 번째 예고 (17, 22-23) 사이에 놓여 있는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하는 참된 의미가 무엇이며 제자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지 가르치십니다. 마태오복음에서 ‘높은 산’은 하느님의 계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1절) 높은 산에 오르시고, 그 높은 산에서 그분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십니다. “해처럼 빛나는 얼굴”, “빛처럼 하얘진 옷” (2절) 은 지상의 것과 구별되는 천상적인 것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천상적인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이런 예수님의 변모에 대한 확증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십니다.”(3절) 율법의 창시자 모세와 그 삶의 실천을 촉구하던 예언자의 대표로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며 부활의 영광을 입으실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에는 변모된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9, 32)고 합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수난 예고에서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부활하게 되신다는 것이 제자들에겐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장차 예수님께서 누리실 참된 영광스러운 모습을(부활) 그들에게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 됩니다.
두 번째는 “구름 속에서” 들려온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구름 속에서 들려온 말씀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로 계시하는 한편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17, 5) 하시며 그분을 하느님의 외아들로 계시 합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말씀"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을 명심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것을 명령 하시는 것입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말씀은 제자들을 통해 ‘군중’ 한테 그리고 이 복음을 듣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거룩한 것을 체험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압도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소리”를 듣고 “얼굴을 땅에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 떠는 제자들” (6)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다정히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7)시며 격려하십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겐 십자가는 더 무겁고 무섭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17,7) 하시는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 주저앉으려는 우리의 나약함을 떨쳐내야겠습니다. 아무런 고통 없이 아니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유혹의 밑밥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던 베드로의 유혹에서 “하느님의 힘에 의지해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도록” (II 티모1, 8) 불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한다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특권이요 신앙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두려움 때문에 애덕행위가 중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심하자는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드려서도 안됩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도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거룩한 변모를 체험합시다.
김 두진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