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인데 무엇엔가 골돌이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누군가 저의 등을 가볍게 만저서 올려다 보니 예수님이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꼭 생시 같았습니다.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준비했던 대답도 없고 당황스러워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주님께 청했습니다.
“주님, 제가 목 마르거나 배 고플때엔 누구의 도움없이도 제 발로 걸어가 제 손으로 챙겨 먹을수 있을만큼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것은 너에게 주었고 지금도 누리고 있다.
건강을 바라지 않을 사람 어디에 있겠느냐. 또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한참이나 또 생각끝에 아뢰었습니다.
“주님, 저의 때가 되어 이세살을 떠나게 될때에는 그런일이 순간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앓아누워 이웃에게 짐이되는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 너무나 갑자기 떠나게 될때에는 잠시만 30분만 생명을 연장되도록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미처 작별인사 조차 못한 이웃에게 (여보게, 실은 내가 30분전에 죽었다네. 부디 잘 살기 바라네.) 이렇게 전화라도 할수 있을테니까요.”
“그런일은 네가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너는 정녕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이제야 제가 정말 주님께 바라는것을 알아냈나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셔서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이 건강을 제 배를 채우는 일에만 쓰이기 보다는 제발로 걸어나가 제 손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도움이 되는 일에 주님의 도구로 쓰여지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네가 말하는것 처럼 실행하여라.”
꿈을 깨어 눈을 뜨니 창밖 동녁에서는 찬란한 빛이 떠 오르고 있었습니다.
성경안에서는 육신의 눈이 먼 이를 보게 해주셨지만 건강을 제배를 채우는 일에만 쓰느라 영적으로 눈이 멀은 저를 일깨워 주셨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건강한 동안에는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당연한 일 가지고 감사드리기는 소홀히 하게됩니다.
몸의 어떤 부위를 막론하고 아프다는것은 고통스러운일 입니다.
나만 아파도 고통인데 가까운 이웃마저 고통을 나누게 합니다.
육신의 아픔도 있지만 눈으로 볼수없는 마음에도 상처를 입으면 아프고 속이 아프면 겉도 따라 시들어 갑니다.
그래서 “주님의 평화가 함께!”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소중한일 인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축복인 이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