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2 주일 김두진 바오로 신부님 강론

4 11일 부활 제 2 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복음 묵상

공동체에 제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발현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셨다.’ 예수님의 숨결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의 생명을 사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 도망갔었지만,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음으로 보여주신 진리, 곧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
.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 또한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 해서 우리는 늘 미사 안에서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 하나이다
.”하고 결의 한다. 오늘 우리가 제2독서로 들은 베드로 1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 , 신앙인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둔
새로운 생명, 즉 자비를 실천하는 생명을 살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지구 공동체라는 말도 결국 사람들은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함을말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의 삶으로 초대받아 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이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구성원의 자격을 가짐으로써 각자는 자신의 정체와 의미와 지원을 획득하는 것이다
. 오늘의
독서가 이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으며
, 부활 후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늘 공동체적 차원이 있다.

 

사실상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못하고
의심을 품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발현 하실 때 제자들의 공동체에 그가 참석하지 않았던 데서 나온 결과였다
.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믿음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인가
?”라고 물어오는 이도 있지만, 우리가 성당에 나와 전례에 참석하고 공동체적 찬미를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저 단순히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를 완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

 

믿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믿음이 없다면 그것이
지옥이다
. 가정에서 믿음이 없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얼마나 힘든 삶이 될 것인가? 믿는 만큼 행복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믿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심하는 마음으로 자꾸 따지고 들면 의심이 커지고, 반대로 믿으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커진다
.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는 행복한 사람이다. 불신이 확신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사실 토마스가 의심의 사도로 알려져 있지만
토마스 사도는 의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다
. 토마스의 의심은 확신을 위한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토마스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믿으려고 노력하면 믿어지는
법이다
. 그래서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여기에 믿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는데
, 믿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굳게
믿으며 확신에 차서 믿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 2 독서에서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다
. 보고서야 믿는 믿음 탓할 수 없다. 하지만 보지 않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삶을 보여주기 못한다면 이것은 탓해야 하고 지탄 받아야 할 신앙이다
. 그래서
오늘의 복음에서 나오는 토마스의 의심은 우리들의 의심과 같기에 우리 모두에게 안심으로 다가온다
.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해서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행복해져 이렇게 고백한다.

예수님, 참으로
부활 하셨습니다
.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