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아들, 요즘 아들

“나쁜 짓을 한 아들이 아버지 앞에 불려왔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조상의 산소 앞에 선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가르친 것을 조상께 백배사죄하고는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습니다.”

아들의 잘못을 대신 속죄한 아버지,
그리고 이를 보고 잘못을 뉘우친 아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대신하여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이 아들처럼 우리도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들이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닮았는지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밤낮 사고를 저질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매섭게 생긴 회초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또 나쁜 짓을 저지르자 아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바지를 걷어 올린 다음
회초리로 자신의 다리를 사정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런 광경에 놀란 아들이 거실로 뛰어나가며 외쳤습니다.
‘엄마! 빨리 와 봐, 아빠가 미쳤나봐!’”

세상이 달라졌고 사람들의 심성도 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은 분명히 살기 좋아졌지만
사람들의 심성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모질어지고 무디어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달래고 타이르고 꾸짖어서 될 일이 아니기에
몸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로써뿐 아니라 또한 모범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아니 삶 전체로,
그것도 모자라 당신의 죽음으로써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무딘 마음으로 그분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별 감동을 못 느끼고
또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한 번 살펴봅시다.
때로는 바르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기도 하지만
또 다시 같은 잘못을 거듭거듭 저지르는 나약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의 죽을죄를 용서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 채 미움을 키우고
또 다른 미움을 낳는 옹졸한 우리들입니다.
자기가 잘못했을 때에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는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개하는 우리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는 고깝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은 용케도 잘 찾아내는 우리들입니다.
말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고
물질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고 들으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세상에 살 것처럼
죽음을 잊고 사는 무심한 우리들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으스대는 교만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자기 뜻을 앞세우는 간사한 우리들입니다.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우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우리들 때문에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시고,
미워하거나 반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또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의 징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그 지극한 사랑이
결국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부활은
그러므로 사랑의 승리이며
십자가는 바로 그 사랑의 징표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합시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바르게 살게 하고,
부활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성길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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