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특히 여성사제에 관한 문제는 신학적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준비된 경우가 아닌
일반 신자로서는 언급하는 일 조차 조심스럽고 매우 버거운 과제일 것이다.
그만큼 중차대하고 교회의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상과업을 총괄하며 책임지는 교회의 최고지도부가 관여하고 결정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만큼 중대하고 모든 교인의 관심사일 수도 있는 그 이유때문에 평신도도 그 사안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는 하지 못 하더라도 그 일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개인 의견으로 말 할수는 있을 것이다.
(어디에 와 있나?)
최근 이 문제가 논란이 되기 이전에도 소위 여성해방운동에 힘 입어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고 남성중심의 사회관습과 전통이 변화되면서 일게된 개혁물결은 자연스레 교회안으로도 밀려와서 교회내에서의 여성의 위상및 역할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신학도였던 발레리 쎄이빙이 여성의 입장에서 관찰한 새로운 신학관을 발표(1960)한 것을 계기로 많은 여성신학논리가 붓물처럼 늘어나자 교황 요한 23세는 (지상의 평화)라는 회칙을 통하여 남성 중심의 기존 교회의 전통에도 여성권리와 존엄성이 재 조명될 것이며 새로운 바람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견을 발표(1963)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은 1965년의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더욱 거세지고 로즈매리 류터, 매리 데일리등 여성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내의 여성들은 교회의 전통, 관습, 전례 및 사목에 이르기 까지 전반에 걸친 개혁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산발적으로 제기되어 오던 (여성의 사제직) 문제는 (성 요안나 국제연대) 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건의되는가 하면 (미국 여자 수도자 장상 연합회)는 결의를 통해(1974)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데서 더 나아가 1976년에는 W O C (The Women’s Ordination Conference, 여성사제 서품회의) 라는 정식 단체까지 조직되었다.
로만 가톨릭 교회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마는 성공회에서는 이미 여성사제를 임명하는 사례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 대하여 교화청 신앙교리성은 교황청의 공식 방침으로 (여성교역사제직)은 불허한다고 발표하고(1976) 그 방침은 현재도 유효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교황청은,
1. 교회의 전통이나 역사상 그런 사례가 없었다.
2. 예수가 사도로서의 12 제자를 남성으로만 뽑았다.
3. 남성인 예수를 남성만이 외적으로 합당하게 대표할 수 있다.
는 등을 불허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교회내의 여성단체들은,
1. 지금까지의 관습이나 전통은 초대교회 당시의 남성중심 사회에서 비롯되고 반영된
것일 뿐이다.
2. 교회의 모든 직무는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결정되어야 한다.
3. 여성사제직 불허는 인권평등이나 정의라는 하느님의 뜻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라고 반박하면서 특히나 사제가 부족한 현실에서 여성사제직은 시대적 요구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
남성과 여성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성경안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인격적으로 차별없이 평등하게 만드셨다.
왜냐하면 남자도 여자도 똑 같이 하느님을 닮은 (사람)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1.27)
(아담을 먼저 지어 내신 다음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지어 내셨다.) 는 대목을 가지고 (누구를 먼저) 또는 (어떤 재료로) 하는 등으로 우위 논쟁거리를 만들어 하는 일은 백해무익한 말 하기위한 말일 뿐이다.
하느님, 당신을 닮은 (사람)을 지어 내시면서 인격적으로 평등한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 하의 개념으로 창조하셨다고 해석한다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창조주의 거룩한 뜻을 거역하는 셈 아닌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그렇게 해서 하와(여자)를 아담(남자)의 협력자(ezer)로서 지어 내셨다 는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한 하느님의 생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나 여자를 인격적으로 평등하게 하느님을 닮은 (사람)으로 창조하셨으되 세상을 관리하는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남자를 (거들) (협력자)로서 여자를 창조하신 그 창조 목적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면 역시 남성본위의 아전인수식 억지논리일까?
(무엇이 답 일까?)
(답)은 예수께서 갖고 계실 것이다.
지금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없는 예수님의 뜻을 헷갈림 없이 올바르게 헤아리는 일은 사람의 몫이겠지만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이 주신 사람의 지혜로 구하고자 한다면 (답)을 얻는 길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답으로 가는데 도움이 될 수있을 길을 다음에서 생각해 본다.
이 문제는 단순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인격, 인권이나 능력등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수님과 여인들)
오병이어의 기적사건에서 짐작할 수있듯이 당시 여성들은 아이들과 더불어 사람의 수를 세는 셈에서 조차 제외될 만큼 차별대우속에 살았다.
그런 사회적 관습에도 불고하고 예수님은 만나는 모든 여인들을 평등하게 대해 주셨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인), (향유를 부은 여인),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우물가의 여인)들은 모두 천대받는 이방인이거나 행실이 나빠 버림받고 쫒기는 그들이었을지라도 주님은 자비를 베풀고 따뜻이 맞아 주셨다.
부활하신후 처음으로 만난 이도 여인이었다.
이렇듯 당시의 관습을 벗어나 사람의 인격을 평등하게 대하여 주셨던 예수님은 같이 일을 할 사도들은 한 사람의 예외가 없이 왜 남자만으로 뽑으셨을까?
시대상을 반영하셨을까, 우연히 그렇게 하셨을까?
전능하신 주님이 그렇게도 중차대한 일을 별 뜻 없이 하시다 보니 그렇게 됐을까?
곰 곰 생각해 볼 일 아닐까?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이들 여인들은 모든 정성을 다 하여 예수님을 곁에서 시중들고 도와드리는 일을 (그들의 일)로 삼았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대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며 위치를 지키셨다.
이 여인들은 제자리도 찾을줄 모르는 부족한 이들이었을까?
자리를 알고 지키며 제 할 일을 수행한 아름다운 여인들이었을까>
( 평신도 한 사람의 생각)
1. 하느님의 일을 주관하는 이만 중요하고 협력자는 덜 중요시되고 인격적인 차별로 인식한다면 그 자체가 하느님의 일을 곡해하며 스스로를 폄하하는 모순일지도 모른다.
2. 교회의 방침이나 규정은 다른 뜻이나 이견보다 존중되어야 한다.
3. 하느님의 뜻이 (여성사제)에 있으면 설사 사람이 원치 않는다 해도 하느님의 그 때가 되면 반드시 그일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4. 하느님의 (참 뜻)과 그분의 (전능)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손수 이루시도록 바라는 것이 그 자녀된 본분이라 믿는다.
5. 교회의 전례나 관습이 반드시 세상의 것을 따라하거나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