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린마 길의 축제에 참여한 선교회에서 나 같은 엑스트라의 손길도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도움이 된다는 마음보다는 좋은 배움의 장일 수 있다는 기대로 갔었다.
오후가되자 인파가 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먹거리, 놀거리등이 중심이되는 놀이터이니 아무래도 대부분 재미있게 놀자고 나왔을 것이였다. 그래도 봉사자 교우들 틈에 한 몫 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준비된 선교책자도 나누어 주고 하였다.
다른 교우들 하는 걸 어깨넘어로 훔치며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겐 상대를 알아보는 혜안이라도 있는 걸까?
내가 손 내미는 이들은 대부분 교회 집사 또는 장로라며 내 얼굴에 차거운 미소와 얄궂은 미소만 남겨주며 떠나가곤 했다.
나는 도우미로 나온 사람인지 자리 하나 축내러 나온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그네들의 가슴안으로 진리의 샘이 흐르게 해 주셨으면 희망하며 기도했다.
* * *
그 때도 그랬었다.
사지도 않을 꺼면서 값이나 알아두자며 점포안으로 들어섰었다.
한참이나 서 있는데도 동포인 주인 남자는 전혀 눈길도 주지않고 하던 일만 계속 하고 있었다.
민망해진 나는 값을 좀 알고 싶다고 말을 걸자 그제서야 힐끗 돌아보더니 느닷없이 밝은 표정이되며 돌아섰다.
” 혹시 목사님이세요? “
” ? “
조금은 심통이 난 내가 머뭇거리다가 ” 네, 그렇습니다. ” 대책도 없이 그래버렷다.
그이는 손을 수건에 닦으며 공손한 자세로 다가 오더니만 어느새 아주 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 어느 교회신데요? “
” 아, 농을해서 미안합니다. 저는 교회의 목사가 아니고 안경을 껴서 눈이 넷이라서 그런 목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톨릭 신자이구요.”
그 이는 (뭣이 이런 싱겁지도 않은 사람도 다 있나.)그런 표정이었지만 의외로 자리를 권하며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천주교에 관해 알아보고 싶은 것이 많은 개신교 집사님이었다.
그동안 만나본 여러 천주교신자들은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해서 아직도 궁금한채 있었다고 했다. 가슴이 덜컹했다.
내가 대답할만큼 준비된 신자인가?
어쨋건 아는 것은 성의껏 말하고 모르거나 잘못 답할 염려가 있는 것은 교회에 돌아가서라도 알아다 반드시 답을 해 주겠노라 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톨릭에 관심을 가져주는 개신교 집사를 만날 수 있는 일을 크게 기쁘고 뜻있게 여긴다고 덧붙혀 말했다. 정말 그런 고마운 마음이였다.
하느님의 말씀과 교리에 텅 빈 내 머리로도 정성껏 답하자 그이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이 너무나 잘못된 것 같다며 나에겐 과분한 인사를 해 주었다.
그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정말 그런 것 같이 보였다.
성령께서 매번 무엇을 말하라고 알려주신 것만 같아 감사하고 기뻣다.
물건값을 물으러 왔다가 나같은 부족한 자도 선교사 한번 되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마저 두근거렸다.
여기서 대화도중 나는 두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아주 먼곳으로 여행하지 않아도 선교의 기회는 찾으면 아주 가까운 곳에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하나)는 언제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이런 경우를 염두에두고 천주교신자는 평상시 열심히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는 교훈이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구태여 선교회 멤버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선교사가 될 수있고 되어야 한다는 그 모범을 (선교사 예수님)과 (바울)로 부터 배워서 알고있다.
나는 과연 말처럼 그렇게 행하고 있는가?
억지로라도 “예.”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자신은 없고 주님앞에 부끄러운 고개만 떨군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가게안에는 손님들이 연거퍼 들어오고 대화는 자꾸 끊어지자 그이는 오늘은 그만 했으면 하는 눈치를 건넸다.
집에 가서 공부를 좀 더 하고 와서 그 집사님을 기어이 우리 예비 교우로 만들어 보리라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며칠후 작심하고 차에 기름도 채우고 한 시간을 더 달려 찾아갔다.
어쩐지 손님이 또 그득했다. 한쪽 구석에 가서 얌전히 차례 오기를 기다렸다.
그이는 지금 얘기 나눌 상황이 못된다며 그러나 또 집사인 부인과 앉아 정말 심각하고 진지한 의논을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또 한번 찾아갔을 때 그는 부인과 지금의 위치에 그냥 남기로 일단 결정했다고 그러나 그동안 잘못 가르쳐준 교회 지도자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도 축제에서 만났던 집사님들처럼 나에게 알듯 모를듯 그런 (모나리자의 미소)를 건네어 주었다.
내가 너무 성급히 꿈만 야무지게 꾸었었나?
아니면 그들이 입으로는 진실과 진리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말과는 사뭇 다른 악취라도 맡아낸 것일까?
꽃은 좋은 향기를 뿜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은다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는 나에게서 그들은 (향기)아닌 위선을 찾아낸 것일까?
(향기)없는 꽃이라면 생화가 아닌 조화(Silk Flower)아닌가?
그렇게 해서 어설픈 모이세가 너무 손쉽게 사람을 낚아보려던 (제 1차) 그리고 (제 2차)선교여행은 열매없는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나는 더 분발하자.
어쨋거나 그 집사님들은 (얄미운 모나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