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님이 오름회 모임에 가 보자하여 주저없이 따라 나섰지요.
기어이 트집잡고 따져야하는 나의 심보가 이 좋은 따질 기회를 넘길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엔 뭘 따질 거 냐구요?
모임이 (오름회)라는데 자동차 기름 값 더 올려보자는 그런 모임 아니겠어요?
기름엔 유독 신경이 예민해 있는 제가 또 올리도록 보고만 있어야 겠나요?
모임이 한참이나 지나도 기름값은 커녕 식료품 값 올리자는 말도 안 나오네요.
제풀에 머쓱해진 제가 또 잔머리 굴렸겠죠?
대체 어딜 오르자는 게야?
오르고 또 오른들 하늘아래 뫼일 것을 아이 키 만한 동산 하나도 없는 삭막한 시카고,
다 아는데 그럼 뭬람?
바로 저 같은 사람들이 진작부터 왔어야 할 (오름회)였습니다.
저같이 잔머리 굴려 피곤하고 따지지 못해 속이 꼬부러져 있는 사람이 와서 하느님의 영성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재충전하여 쓸모 없을줄 알았던 자신을 아직도 얼마던지 이웃을 사랑하고 보듬고 봉사해서 긍극적으로 자신을 기쁘고 활기찬 긍정적인 삶으로 이어가자는 그런 취지의 모임인데 어째 따지러 갔던 제가 ” 알렐루야!”를 마다하겠습니까?
고등학교때부터 등산반엘 있어서인지 저는 사람 나이하고 물가만 빼고 뭐든지 오르는건 주책없이 다 좋아하거든요.
더구나 말 설고 물 설은 땅에 와서 자식농사라도 한번 잘 지어보자고 했고 동창회때 가 본 친구네 집, 고향에서는 내가 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여기 와 보니 큰 집 사 놓고 으시대는 그 사람한테 기 죽기 싫어서 좋은 집, 좋은 차 사 놓고 그거 갚느라 별보고 나갔다 초생달 보며 집에 돌아와 하숙집처럼 잠만 자고 또 나가던 그런 스트레쓰 쌓인 삶들에서 벗어난 이제 (Golden age), 머리에 좀 서리가 내리긴 했어도 새로운 나, 새로운 삶을 모여서 함께 발견하자는 그런 거래요.
고마운 모임 아닙니까?
한참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인데 한 여학생이 저보고 “아저씬, 무슨 세대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 땐 젊은이들이 무슨 세대니 하는 것들을 유행처럼 만들 때 였나봐요.
갑자기 뭐 마땅한 대답도 없고 그래서 얼떨결에 “응, 난 S S 세대야.” 했지요.
“…? ?”
“글쎄, 첫번째 에쓰는 약간 쉬었다는 머릿자이고 두째 거는 그래도 아직 마음은 싱싱하다는 그런 에쓰야.”
그 아이는 저하고 더 얘기할 필요없다는듯 뛰어 갔습니다.
저는 곧 죽어두 “나이는 숫자일 뿐이야!”그렇게 고집부립니다.
물론 그런다고 생명이 연장되지도 않고 하상회에서 받아줄 것도 아니란 걸 잘 압니다.
사는 동안 육신의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젊은 마음갖고 “나도 할 수있다.” 그러면서 기쁘게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자 뭐 그런거죠.
그러잔다고 늘 그렇게 되는 거는 아니고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서글퍼질 때도 여러차레나 찾아오고 하지만 ” Let us try anyway. Nothing to loose.”
그래도 한가지도 안따지고 그냥 가면 제가 잠이 오겠어요?
(오름회)는 왜 육신적인 나이, 은퇴년령을 정해 놓는 거냐구요.
그런 푸른 생각 가진 사람은 누구든 다 모여라 그러면 안되나요?
(가서 보니 참 잘 왔다 싶었습니다. 좋은 것 같아요. 일단 많이들 와 보세요.
저 무슨 콤미숀같은 거 받고 쎄일 하는 거 아니예요.오름회 간부가 주는 떡 한쪽하고 커피, 그게 다예요. 뭐 요즘 그게 뇌물 축에 드나요? 오세요. 살며 보니 그래도 누가 오라고 할 때가 좋았던 거 같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