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산책 길에서 저녁을 만나 마침 넘어가는 해가 연출하는 노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석양의 모습에 넋을잃고 있는데 어느새 만물은 어둠에 쌓이고 말았습니다.
멋진 자연의 조화는 미련만 남겨주고 저 넘어 또 다른 이 들에게도 보여주려고
떠나는가 봅니다.
그 잠시 머물던 저녁의 해는 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잠시만 서산에 매달렸다가 고개마루를 넘어간 황혼은 바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 *
나이 들어가며 사는 모습들을 둘러보면은 대체로 두 갈래로 변해가는 것 아닌가
싶어집니다.
어떤 이는 아주 선한 모습이되어 마치 다시 어린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예수님이
지칭하셨던 그런 어린아이, 하늘나라가에 가게될 것이라던 그런 어린이의 사랑스런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뒤틀린 사나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런 모습도 보게됩니다.
만사가 다 불만이고 불평스럽고
젊어서 못다한 싸움을 더 늦기전에 실컷 해보자는 심산처럼 좌충하고 우돌하는 볼상 사나운 몰골도 서슴없이 보여줍니다.
저 자신은 어느 쪽에 속해 살아가고 있을까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봅니다.
자신의 일이니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메기려하지만 양심은 제가 그 후자의 그뤂에 속한 멤버라고 일러줍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늦기전에 고쳐야 할 숙제로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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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누르고 억눌러도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왜 이리 많아지는지요.
전에는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솓아져 나와 저를 덮어버리는 것인지요.
어쩌면
전에는 먹고 사는 일로 또는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그러느라고 미처 삐져나올 틈을 못보았던 잠재의욕들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그런 것을 배울 수있는 소질이 전혀 없어보이는 것들마저 꼭 배우고 싶으니 정말 못말릴 욕심임에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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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때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젊어서 혈기로 부리는 옥심이나 실패는 혹시 만회할 기회를 만들 수도 있으나
늙어서 부리는 욕심(老慾)은 사람을 추하게 하며 결코 삼가하고 명심해야 할 덕목이라 하였습니다.
욕심의 내용들을 살펴보니
그래도 다행으로 보여졌습니다.
이제 돈을 많이 벌어 지금보다 좋은 집으로 옮겨가고 좀 더 깨끗하고 잘 굴러갈 그런 차로 갈아 탓으면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문제인 것은 무슨 글 쓰는 방법을 배우기, 악보를 읽으며 악기들을 연주하는 법을 익히기, 하얀 캔바스위에 나의 생각을 그림으로 옮기는 법,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전에 듣기로는 노력해서 될 일이있고 아무리 애를 태워도 안될 일이 있는데 이런 예능이나 체능같은 것은 어느만큼 타고난 달란트로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런 것을 배우고 싶은 과욕을 잠재울 수가 없으니 걱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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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잠시 잔꾀를 부려봅니다.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면 하느님께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면 혹시 주님이 속으시는 셈치고 없었던 소질이라도 조금은 심어 주시려나 그런 어거지같은 희망을 가져 봅니다.
꿈이 너무 야무졌을까요?
이루어지지도 않을 한 낮의 강아지의 꿈일까요?
그래도 희망을 지키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