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WINNER, or LOSER?
전해 듣기로는 한국에서 한 젊은 여학생이 아무리 좋은 다른 조건을 갖추었더라도
일단 키가 작으면 여자의 데이트 상대로서는 결격사유가 되고 그래서 그는
LOSER다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하였다고해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고한다. 만일 그 학생이 말하기를 “나는 키 작은 사람은 무조건 싫다.”는 뜻이었다면
꼴불견이긴해도 그거야 개인적 취향이고 생각이니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마는
자기네 또래들 대다수 여학생들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었다면 기 막힐 일이다.
지성인들인 젊은 대학생들의 마음속에 이런 정도의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나라의 앞날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서 지나친 염려일까?
이렇게 모두가 눈에보이는 가시적인 것, 말초신경을 자극해주는 것들에만 마음들을
빼앗기고 있으니 성형외과 의사들만 신나게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그 학생(들)에겐 대단히 안된 말이지만 부모에게 그 비싼 학자금 얻어서 고작 그런거나 배우고 있다면 바로 당신이 LOSER야.
(이건 자라려다 만 그런 키를 가진 내 자신이 괜히 뒤가 캥겨서 이렇게 신경이 예민해져서 얼굴 붉히는 거 아닐테지요? 어쩜 그럴찌도?)
* * *
고린도 교회
우리가 배워서 다 알고있는 이야기.
2,000년 쯤전에 사도 바오로가 지금같으면 비행기를 타고도 반나절도 걸릴 그 먼곳을
걷고 나귀도 얻어타고 또는 나룻배를 빌려 타며 찾아가서 술과 그 술을 파는 여인들과 마도로스들로 범벅이되어있는 환락의 도시 고린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놓고
또 다른 곳에도 교회를 세우려 떠나있는 동안에 그곳에서는 벌써 서로 패를 갈라,
(바오로 파), (아폴로 파)니 해 가며 서로 날을 세우고 침 튕겨가며
“내가 너 보다는 조금 더 잘낫다.”고 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더 나가, 음란을 일 삼고 또 서로 상대를 헐뜯다못해 교회밖의 사람들에게까지
교회의 부끄러운 일을 고발하고 그랬었던 모양이다.
그런 소식을 소문을통해 듣고 바오로는 참으로 마음이 비통해지고 슬픔에 잠겨
간절한 편지를 보내며 하느님의 교회이니 제발 (오직 예수 파)로? 하나가 되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 가운데 이런 말도 하였었다.
” 왜 차라리 그 불의한 일들을 받아주지 그럽니까? 밖에까지 들고 가느니 차라리 그들 에게 그냥 속아주지 않습니까?”
이 말속에 얼마나 그분이 속상했을지 속을 들여다보는듯 하다.
그렇긴 하지만 진정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부정한 일을 받아주고 못된 짓 하는 이들에게
속아주라는 뜻이었을까 생각해보게된다.
내가 사도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마땅치않으나 그저 나의 마음에 와 닿는 메시지로서는
이렇게 받아들여본다.
예를 들어 본다.
나의 자녀가 마약을 배워 들어왔다든지 어떤 못된 것을 배운 것을 알았을때 알면서도
내 자식이니 모른체 그냥 속아준다면 그런 비뚤어진 사랑은 궁극적으로 자식도 더 망치고 불행으로 몰고 가 가정 모두를 망하게 할지도 모른다.
또,
하얀 창호지위에 시커먼 먹물을 떨구면 하얗던 종이는 얼룩이 지게된다.
그런데 그런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자꾸 속아준다면 결국 흰종이는 먹물과 함께 멍들고 말 것이 뻔하다.
* * *
그러면 어쩐일로 고린도교회는 그런 불의를 받아들이고 속아주라는 것일까?
나 개인으로서는 이렇게 메시지를 받고싶다.
부정하고 불의한 자들이라도 그것을 내가 바로잡고 심판관으로서 무리하여서라도 고쳐본다고 외부에까지 그 요란한 소리가 새어나가도록 요란을 떨어 오히려 분란을 더 깊게 더 쟁파가 깊게하느니 그들이 깨달아 돌아오도록 하느님의 마음이되어 배척 대신 포용을 투쟁 대신 사랑을 보여주어라는 그런 뜻이 그안에 숨어있지 않을지?
불의를 보았을 때,
그것을 대하는, 그것을 피하는 좋은 방법은 나는 그렇게 따라하지않는 것일 것이다.
100 명중 아흔 아홉이 다 그렇게 해도 나는 안해야된다.
많은 이들이 대세에 휩쓰려, ” 에이, 남들도 다 하는데 뭘 나만..” 그러는 걸 본다.
가장 비열하고 비겁한 위선이다.
그러나 그 건 다만 소극적 방법일 뿐이다.
불의를 따라하지 않을뿐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앞장 서 반대로 의롭고 선한 일을 함으로서 내 선한 모습을 보고 불의한 자도 따라오게 하는 자세가 적극적 선의 자세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사도 바오로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었을까?
* * *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모습이 있다.
2천년전에 세워졌고 그 때의 건물도, 그 때의 사람들도 다 바뀌었을 터인데
어떻게 그 고린도교회의 모습은 조금도 흐트러지지않은채 고스란히 우리 곁에 재현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만큼 너무 똑같은 그 교회, 그 교우들의 모습이 지금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지 않은가?
지금도 우리는 아폴로 파, 베드로 파 그 밖의 양파, 쪽파의 한 부분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아폴로는 다른 파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판단하고 있는 걸까?
어느새 나는 알게 또 모르는 새에, 하얀 종이(하느님의 성전)에 먹물을 떨구며 있지는 않을까?
사도 바오로는 아마도 2 천년전에 썼던 똑같은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지금도 우리 교회에 보내려고 쓰고있을지 모른다.
* * *
쇠가 굳으면 단단할 것같고
바위도 대단한 것같아도 까짓 빗물에 뚤리는 것을 보게된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업고서 팔레스타인이 까분다하며 설쳐대고
팔레스타인은 왜 힘 좀 쓴다고 우리 살길을 가로 막느냐고 테로를 한다.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마태26,52) 이라고 예수께서 경고하셨고
“온유한 자는 행복하다.”(마태5,5) 고 축복하셨다.
오사마 빈 라덴은 쫒기고 있지만 간디는 몸은 갇혔으되 그의 마음은 가두지 못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께서 까짓 로마 병정에게 잡히시고 유다인 하나에게 고발되고 돈 몿푼에 팔리셔서 알몸으로 흔한 나무 십자가를 지셨다.
“부러지느니 차라리 ,오히려 굽히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