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노자, 파스칼 그리고 단군

창조주, 하느님이 사람을 창조한 이래 우리, 사람가운데 일찌기 뛰어난 깨달음으로 진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 선 선각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많은 생각과 그 고통을 통하여 이루었을그들의 선각으로 인하여 우리는 어쩌면 좀 더 쉽게 진리에 다가 갈 디딤판을 얻은 셈이다.

우리에게 좋은 디딤돌의 역을 하여준 많은 이들 가운데 단지 몇을 그것도 그들 서로가
태어나 살았던 시대와 장소도 너무나 달라 서로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어떻게 각각 (진리)이신 하느님을 만나서 알고 깨달아 같은 (하나)의 생각에 접근하였고 바로 그 생각들을 통하여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서로 교류할 수 있었을까를 함께 살피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1. 노자와 파스칼 그리고 단군. 그들은 누구이며 언제 사람들인가?

노자 :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였던 B.C.570- 490 년경에 살았다고 전해진 초나라 사람.
          이름은 이이(李耳). 도교의 창시자 그리고 도덕경의 저자.
          공자의 제자라고도 하고 또는 공자가 젊은 시절에 노자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고도 하니 분명치않고 노자는 실존하지도 않았다는 주장마저 있으니
          어쩌면 훗날 그를 따르던 후학들이 책과 학문을 완성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파스칼(Blaise Pascal) : 17 세기(1623-1662)에 프랑스가 낳았던 수학자이며 물리학
                                   자.그리고 사상가이다. 유명한 팡세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수도회인 예수회와 대각을 이루는 신앙혁신운동에
                                    접근하여 활동하던중 처음으로 (향심)의 경지를 체험한후
                                    기독교 옹호론자가 되어 그는 교회밖의 호교론자라는 평
                                    을 듣기도 하였다.

단군 : B.C. 1700-1800 경에 환인(桓因, 호랑이)과 환웅(桓雄 곰) 사이에 낳은 아들로
         아사달이란 곳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창건하였다 함.
         이 설화에대한 흥미로운 해석은 하늘에서 온 사람이 동물을 인간과 어울려 살
         게하여 자연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혼인하여 낳았다하여 단군을 해모   수  즉 해의 아들이라고도 불렀다 하며 해마다 10월엔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무천)
         단군의 어원을 탱그리(Tangri, 몽골어) 탄쥔(Tanjun,중국어)에서 찾아 천군
         (天君), 즉 하느님의 아들, 최고의 종교지도자로 삼았다 한다.

2.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여 깨닫고 그것을 말하고 있는가?

    위에서 살필 수 있듯이 파스칼을 제외하고는 사람이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만난 일은 물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들은 일도 본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대는 각각 너무나 오랜 세월을 서로 뛰어 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실존 인물이었는지도 분명치 않고 그런 것들은 여기서 하등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에 의했던 그들을 따르던 제자들이 깨달음을 완성하였던간에 그 깨달음의 내용이 중요한 일이겠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배우는 성경의 복음인 마태, 마르꼬, 루까 그리고 요한복음들이 반드시 그 분들, 복음의 저자 자신에 의하여 직접 쓰여졌을 필요가 중요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말씀이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파스칼만 해도 예수님 사후 17 세기가 지난후에 살았던 사람이니 우리나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안 것은 성경이나 전해진 이야기들을 통한 성령의 은총이었을 것이다.

(노자)는 그가 세운 도교의 근본이되는 도덕경(상하 80 장)을 통하여 다른 많은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 도가 있으면 전쟁이없는 평화가 온다.”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욕망에 끌려 다닌다면 그것은 큰 불행이요, 재앙이다.”
“도인은 우주와 하나가 된 의식 그 자체이다.”
“마음이 맑고 맑으면 천하를 안정되게 할 수 있다.”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마치 부족한듯이 보인다.”
“도는 무한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다.”
“최고의 선이란 물과같다. 물이란 능히 만물을 이롭게하여 다투지 안니하고 낮은 곳에 처한다. 드러므로 도에 가깝다. 따라서 도란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와 같은 것이다.”

(파스칼)은 말한다.

“크리스챤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손해볼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설사 그가 죽어서 하느님도없고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었다고 판명되더라도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사실상 그는 믿지않는 친구들보다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하니님도 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그는 천국을 얻을 것이고
그의 무신론자 친구들은 지옥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는 또 그의 비망록에서 하느님께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불(FIRE)

감동, 기쁨, 평화.
나는 당신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영원히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내가 가진 일체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포기합니다.
전적인 순명, 이 땅에서의 잠시의 노력을 통해 얻는 영원한 기쁨,
나는 당신의 말씀을 결코 잊지않겠습니다. 아멘.”

(단군)
고조선을 세운 그는 우리 민족의 첫 선조이다.
단군은 아마도 예수의 이름을 그가 그리스도임을 직접 들어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스스로가 하느님에게서 나온 사람임을 깨달아 알고 해마다 10 월이되면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이야기는 설사 그것이 설화라 하더리도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그의 깨달음을 통한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친 일은 더욱 놀랍다.

“집에서는 효도하며 밖에서는 나라에 충성하라.
착한 것을 받을어 나쁜 짓을 않는다. 선한 일은 말보다 실행하여야한다.”

그는 또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을 통하여 인본주의(Humanism)을 실천하고 가르쳤으며 그 사상은 바로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과 인간을 위하고 이롭게 한다는 그의 철학이었다.

3. 그들의 깨달음과 우리의 배움

하느님의 진리는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불변하며 영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누구이건 언제 어디에 있었건간에 진리를 알고 깨달을 때는 모두가 같은 진리의 말씀에 귀일하여 하나를 이룬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노자도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그의 중용사상을 설파하였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다 하느님(예수님)의 가르침에 연유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참된 행복) 마테 5, 3, 루까 6,20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너희는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4. 결론

노자도 공자도 또는 석가나 단군도 직접 들어본 일이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직접 들어 부른 적은 없다. 그들이 어떤 식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호칭했건간에 그들의 호칭안에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있었으면 바로 그들은 하느님을 그리며 그분의 뜻을 사랑하였다고 말해서 어긋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까지 하느님을 야훼, 여호와, 아빠등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진리이신 하느님을 만나고 알고 깨달아 그의 뜻에 맡게 살아간다면 우리도 모두
노자와 파스칼과 단군과 하나의 같은 생각안에 살게 될 것이며  그들의 깨달음과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든지 누구이든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지 상관없이 모두 주님안에서 하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의 높, 낮이나 그 깊이가 반드시 특출했던 선각자들과 같아야 할 사유는 없을 것이며 다만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에 걸맞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창조주의 그 창조목적에 부합하였다 하고 판단받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 선각자들에게서 몇가지 특징을 보게된다.

첫째,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올바른 생각으로 전해지며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은 다름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이 옳아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그렇게 훌륭하고 올바른 선각자들의 깨달음이고 가르침이라 할찌라도 그것은 모두 피조물의 것으로써 창조주 하느님은 그들이 이세상에 있기 이전부터 예언자들을 통하여 내려준 가르침안에 있었던 것들을 다만 그때에 알아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세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느님의 가르침, 진리를 깨달아 또 깨달은 진리를 이웃에게 전하여 함께 나누는 일을 하는 그들 선각자들은 그 때문에 훌륭하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되는 이유일 것이다.

네째, 그런데 사람들중에는 하느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또는 선각자들을 통하여 내려주신 뜻을 깨우치지 못하거나 배우려하지 않거나 알고나서도 그 진리를 일상속에서 실행하려하지 않거나 하는 이들이 많음을 보게된다.    

다섯째, 이것이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의 잠자는 영혼을 깨워 일으키시려고  우리에게 하느님은 잠시도 쉼없이 그 말씀을 통하여 “너희는 들어라.” 하시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배우려하고 그 배운 것을 오늘의 삶속에서 실행해야하는 당위성이며 또한 의무일 것이다.
(위의 글 내용중 대부분은 저 자신의 지식안에서 나온 것이기 보다는 여러 책과 자료에서 발췌하여 빌리고 베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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