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츄사는 달려 간다)
아마도 그 때 닥터 지바고가 소설로 또 영화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던 무렵이었던 것같다.
텔레비가 아직 없었던 시절, 래디오에서는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가고 있는 유행가를 재빨리 들려주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해 주었었다.
오래전의 그 노랫말을 기억해 낼수 없지만 좌우간
그렇게 “카츄사는 달려가고…” 있었다.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데 얼마전에 우연히도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마치 앓었던 첫사랑이라도 만난듯(정말 내게도 그런 첫사랑이란 게 있었나? 남의 얘기 빌려 하는 말이겠지.) 아릇한 향수의 느낌이 잠시 가슴을 안아주었다.
그런데 난 큰 의문이 생겼다.
아니? 처음 카츄사가 달려가고 있다고 했을 때가 아득한 세월의 뒤안길 인데 아직도 그녀는 달려가고 있다면 도대체 어딜 가고 있었기에 아직도 달린담.
(남이사 달리든 걷든 뭔 걱정.. 할 일도 어지간히 없는 사람의 걱정이니 염렬랑 놓으슈.)
* *
요즘은 가히 스피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셀폰도, 컴퓨터도 엘레베이터도 스피드가 없으면 주인이 버리기전에 자진해서 쓰레기통으로 뛰어들어가는 편이 모두 덜 고생시킨다.
젊은이들은 서둘러 결혼하고 얼른 헤어지기로 합의하는 게 풍조인가 싶다.
하이위이에서 적당히 가고 있는 사람은 사방에서 경적을 울리며 “Are you dummy?”
참을성없는 스피드광에게 핀잔받기 십상이다.
한국인 주인의 점포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다른 말은 못알아 들어도 “빨리, 빨리!”만큼은 얼른 알아들줄 안다. 안그러면 ‘you are fired. Understand?” 정신 차려야지.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달려가게 하는 것일까?
“………..”
한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 다 빨리 가더라도 제발 무덤에만은 제일 늦게 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지금 건강식품만 골라 먹으며 헬스클럽에도 가고 있나이다. “
(숲을 뛰쳐 나온 호랑이)
물론 호랑이는 숲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안에 사냥감도 또 쉴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벗어나면 써커스에서 길들여지거나 동물원의 울안에서 주는 밥이나 얻어먹어야 한다. 제 본성을 잃게된다.
그런데 호랑이 하나가 제 살곳을 뛰쳐 나왔다고 세상이 야단이다.
임호(林虎) 씨 얘기다.
임호라면 누구인가? 골프를 잘한다는 Tiger Wood 얘기이다.
그가 딱 걸렸다.
가는 곳마다 알아서 대령하는 여인들을 섭렵하다가 어부인에게 들통이 나서 야단이다.
골퍼는 골프만 잘하고 돈도 많이 벌어들이니 그러면 됐지 까짓 스캔들 정도야 눈감아줄 수도 있지 뭔 야단이냐고 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앞으로도 여전히 공 잘 치고 돈도 계속 쌓아갈지 모른다. 한갖 필부도 수신제가가 지켜야 할 덕목이거든 하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살아가는 인물에게서야.
유명인은 어쩌면 Privacy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Role mode이어야 할 무거운 책임감이 늘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클린튼이 현직 대통령이었을 때에 그것도 공관에서 집무시간에 온갖 브끄러운 짓을 저지르고도 딱 잡아 부인하다가 사생활이라고 둘러대고 했었다.
많은 이들이 일만 잘하면 됐지 그게 뭔 상관이냐고 했었다. 어떤 여인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자기 남편이라면 용납 못한다고 오락가락 하기도 했다.
미국의 병든 정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사례였다.
사람이 실수를 하여 허물이 생기면 그것은 허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같은 허물을 거듭하면서 고치려 하지 않으면 그것은 허물이며 더구나 허물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면 참으로 큰 허물을 얻는 셈이다.
구태여 신앙을 말할 필요도 없다.
구태여 나 혼자 의로운체 하려는 것도 아닐 것이다.
눈에 안보이는 속이 병들면 반드시 겉모습도 또 모두도 망가져 가게 마련이다.
호랑이가 숲속에 머물며 정글의 룰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며 오만해지면 결국엔 갈 곳은 써커스에서 재주 부리며 그 대접을 받거나 아니면 울안에 갇히고야 말 것이다.
(이상하고 또 이상하네)
전에 딸아이가 한 교회에서 주관하는 젊은이들의 만나는 모임엘 다녀왔다며 신이 났다.
“아빠, 그 모임에서 정말 저의 이상형(理想形)을 만났어요.”
” 얘야, 사랑하는 딸아. 네가 너의 엄마를 닮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아빠를 닮은 네가 무엇이 답답해서 그런 이상형(異常形)을 만나야한단 말이냐? 너무 서두르지 말고 좀 더 기다리며 아빠같은 이상형을 찾아보도록 하는 게 어떻겠니?”
“저는 싫어요. 너무 고르다가 정말 아빠같은 異常形을 만나기라도 하면 전 어쩌게요 ?”
* *
토마스 모어는 그의 책속에서 샹그릴라를 고안해 내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이상향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었겠지만 과연 이 세상 어디에서 유토피아를 만날수 있을까?
Utopia란 낯말 그 자체가 없는(Ou) 장소(Toppos)라는 의미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파아란 풀밭에 팔베게를 하고 누우니 예가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소냐!” 고 한 시인의 노래처럼 이상향은 어디에도 그러나 바로 내 마음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때에 찌들고 멍들은 내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비워서 내 마음을 가난하게 하면 그래서 하느님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다면 아마 그곳이 바로 이상향일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이는 행복하다.”고 예수께서 이르셨으니 그말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오늘 저녁 이 게시판에 들어와 이상과 또 다른 이상사이를 자꾸만 왔다갔다 해서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그랬었는지 내 정신이 좀 이상하고 이상해 보인다.
남 얘기 말고 우선 온갖 잡동사니로 빈 틈도 없을 내 마음이나 청소해 내려면 이만 일어나 고해소에 달려가 기다리는 줄에 끼어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