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공부반에서 그 동안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를 결석없이 잘 끝냈다고 박 아녜스 수녀님이 손수 예쁘게 마련하신 졸업장 ? 과 함께 꽃 화분까지 받아 왔다.
거룩한 독서는
주의 깊게 읽은 다음
그 말씀을 음미하고 묵상하여 그 말씀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후에
관상의 단계를 게속 이어 가야한다 고
누누이 가르쳐 주셨지만 과연 내가 얼마나? 몇 번이나?
정말 열심히들 하신 다른 여러 형제, 자매님들 틈에 한 묷 껴서 얼떨결에 얻은 것이긴 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선 혼자 얼마나 쑥스러웠었는지.
그 시간에 집에 있으면 농구나 야구를 켜 놓고 앉아 얼 빠지고 있을 것이기에 그럴바에야 차라리 그 자리에 다녀온다면 ‘Nothing to lose.” 믿져도 본전은 되겠지하며 실상은 성의도 없이 습관적으로 갔었던 것같은데 어느새 여름방학을 맞게된 것이었다.
새삼 하느님앞에, 그리고 수녀님, 한반 교우님들께 또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본다.
* *
얻어온 화분의 꽃을 들여다 보니 참으로 아름답다.
아직 채 망울이 활짝 피어나려는 다소곳한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꽃망울들이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일까
구유에 오셨던 아기 예수님의 모습일까
어디선가 만났던 인연같기도 하고
오랜 세월 거슬러 함께 거리를 내지르며 함성을 지르다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젊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억울한 그러나 자랑스런 학우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늘이 바로 그날, 4 월 19 일이구나.
1960 년의 4 월 19 일.
학교교정을 뛰쳐나온 우리는 을지로와 서울시청앞을 지나 경무대앞까지 아마도 성난 파도처럼 단번에 몰려 갔었다.
무차별로 난사하는 경찰의 총알들을 두려워하는 학우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독재자는 물러가야한다는 명제 그것 하나에 모두 한데 뭉쳤다.
곁에서 함께 뛰던 학우들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 저기서 쓰러지고 그렇게 죽어간 의인들의 피는 세월이 흐르며 민주주의의 거름이 된 모습으로도 또 그 피를 오용
한 못된 정치인들에의해 더렵혀진 모습으로도 변해 간 흔적을 보게된다.
* *
얻어온 화분의 꽃을 아주 정성되게 잘 가꾸어 활짝 피게하여 오래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들여다 보며 그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싶다는 욕심이다.
그러자니 정말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꽃집에서 화분을 사다가 단 한번도 제대로 키워보지 못하고 그들의 생을 아주 짧게 마감시켜준 전력이 여러 차례나 있으니 말이다.
햇볓을 아니면 수분을 또는 잘못된 흙을 섞어주었던가 그런 이유들일테다.
더 솔직히는 성의가 없어서이겠지.
책을 보거나 이웃에게 묻거나 그런 정성도 없이 그저 물이나 퍼다 주면 제가 저절로 잘자라겠지 그런 심보를 예민한 꽃들이 그런 미련한 눈치도 모를라고?
*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데
하필이면 내 곁에 오게되서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그 꽃들은 아마도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자책감이 억누른다.
언제나 적당히 그렇게 하느라면 만사는 잘 되기만 하겠지
왜 남들은 뼈를 깍는 노력과 피 토하는 훈련으로만 저 산을 넘고 그 강을 건너려 하는 걸까 나처럼 그렁 저렁 봄이면 냇가에서 콧노래 부르고
여름이면 여치와 함께 중천에 걸린 해만 바라다가 이제 어느덧 해는 서산에 걸려 있는 걸 보고서야 나태한 회한에 가슴치며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번에는 기어이 꽃망울을 활짤 피게하리라는 각오로 피어보지 못하고 진 4. 19 때의 학우들과 화분의 꽃망울과 내 자신을 생각하며 여기 어설픈 노래 한 마디 읊어 본다.
미 개 화
동창은 저 만치나 밝았건만
이제나 넌 피어 볼까나
아이고머니
어느덧 해는 중천에 걸렸구만
넌
저제나 망울 지려는 거여
장독대에 그림자는 한 자나 되는데도
애간장만 태우고 그러고 있을거여
저것 들어 보라구요
안타까운 매미조차 목청을 돋구잖소
피어 보려나 피어 나려나
어쩌나 아이고
그새 해는 서산에 걸리고 말았구만
미개화야 미개화야
방긋 한 번 웃어보지도 못하느냐
활짝 기지개라도 켜지않고 그러느냐
기나 긴 여름 햇살에 하품 한 번 하고선
그래도 세상 구경 했잖으냐고
그걸 자랑 삼으려는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