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우주 그리고 하느님

(바둑 그리고 하느님)

군대 생활하고 있을 때였는데 점심때만 되면 과장님과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친구가 있었다. 지나면서 보면 과장도 그 친구도 자못 심각한 모습으로 하얀 돌, 검은 돌을 번갈아 놓는데 도무지 왜 그렇게 재미있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샘이 많고 심술도 사나웠는데 남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과장이 전화를 받으려고 잠시 자리를 뜨는 틈을 타서 바둑판을 흔들어 엎고는 그랬다.
” 야. 새파란 젊은 애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공이라도 차며 뛰어놀지 청승맞게 너 하는 짓이 그게 뭐냐?”

자꾸만 그러자 하루는 그 친구가 날 붙들어 놓더니 바둑을 가르쳐주마 했다.
내 심통을 그렇게라도 해서 고쳐줄 심산이었다.
” 너 이게 얼마나 재미 있는줄 알기나 해?”

그렇게 해서 그 친구의 문하생으로 등록하고 그 원리를 배우개 되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늘지 않는 나의 바둑실력이었다.
I Q가 50, 60 정도를 넘나드는 나는 그 친구에게 아홉점을 깔아도 맨날 만방으로 터지자 나는 곧, ” 너나 잘 해.” 그리고 손을 놓고 그러나 더 이상 심술을 부리는 것도 놓았다.

바둑을 창안해 낸 중국사람들은 참으로 경이로운 이들같다.
판에다가 그냥 줄만 가로 그리고 세로로 19 줄씩 그어놓고 하얀 돌과 검은 돌로 아무리 여러번 두어도 반복되는 일없이 무궁무진 새로운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

구태여 결점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쭈그리고 두니 운동부족이 되고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점들이다.
미국에와서 외톨이로 사는 나는 가끔 그 친구 생각이 나지만 같이 둘 방법이 없다.
그때 괜히 심통을 부리고 그랬나 싶지만 내 심술이 그때 그것 뿐일가?

중국인들이 경이로운데 우리의 하느님은 어떠신가?
끝도없는 온 우주에 아무런 줄도 치지 않으시고 하얀 돌 검은 돌로 편을 가르지도 않으시면서 모두 함께 어우러져 기쁘게 게임을 하라는데도 나같은 자들은 판에 열 아홉줄은 커녕 마음안에 천 구백 아홉번도 넘는 줄과 담을 쌓아놓고 이웃에게 심술과 샘을 부리고 편을 갈라 싸움질이나 하지 않는가?

아마도 그래서 자꾸만 바둑판을 엎는 나를 “구제불능” 이라고 했는지 모르지.

아! 이제라도 캔사스에 사는 그 친구한테 소주나 한병 사들고 놀러가 바둑이나 한 판 놀고 왔으면 좋겠는데 이 하수를 이제는 안받아 줄테지?      
” 소주 살 돈이나 있고 하는 소리야?”
” 내말은 소주 한병이 있으면 안주를 내놓으라고 할텐데.. 그 말이라니까!”

                                                 * *

나라는 위인은 어디 바둑만 못두는 게 아니다.
남들 다 하는 골프.
싸구려 클럽도 30 년전에 사 놓고 제대로 잘 되지를 않으니까 그대로 졸업식을 혼자
마치고 성당에서 한글학교 후원대회를 한다고 주보에 공고가 나가면
다른 것만 다 읽고 그줄은 건너 뛰고 못 읽은 것처럼 친교실에 가면 엉뚱한 월드컵 얘기나  아니면 동물의 왕국같은 알냥한 얘기나 한다.
그때나 저제나 불능인 것은 마찬가지.

며칠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한국 처녀들이 많이 나온 LPGA 경기를 잠시 구경하게 되었다.
네? 칠줄도 모르면서 골프는 뭘 구경하냐구요?
잘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며 대리만족 한다고 변명해야 할까?

ANYWAY.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방안에서 골프 구경을 했는데 골프장의 여인들의 얼굴은 그대로 하얗고 뽀얀데 방안에 있던 내 얼굴이 많이 그을렀으니…

꾸르실료 교육받으며 보니 율동시간에
“오묘하신 예수, 오묘하신 예수
그 사랑 놀랍네.”

정말 무한하신 그 사랑 놀랍다.
그런데 율동때 왜 몸을 비비 틀어야 하는지 난 도무지 잘 되지는 않고…
그래서 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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