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상서

오늘
어머니 한테 편지가 쓰고 싶어서 종이하고 연필을  책상위에 꺼내 놓았습니다.

아침에 성당에서 보니 모두들 예쁜 카네이숀을 달아 드리려고 엄마들의 가슴을 찾고 있던 젊은 얼굴들을 보았대서, 또 미사가 끝나자 엄마가 좋아하시는 맛난 것들을 사 드리려고 모시고 떠나는 그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집으로 왔대서 꼭 날을 잡아
오늘 편지를 쓰고싶어진 건 아니예요.

지금 마악 저녁을 차려 먹고나서 책상으로 물러 앉으니까 전에 어머니가 저에게 하시고싶은 말 있으면  제 방문을 살그머니 밀고 들어오시면  제가 어머니 말을 받아 그 내용에 대해서 제 의견을 두런 두런 말씀 드리곤 했었던 생각이 나기에  오늘 저녁에도 또  그런 식으로 내키는대로 두서 없이  두런 두런 쓰고 싶어졌어요.

지난주에는 정기네 내외가 여길 다녀 갔어요.
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땐
얼마나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또 얼마나 마음이 안절부절 했었는지 짐작 가세요?

정기 혼자만이 아니고 제 처를 동반한다는데 명색이 형이 돼 가지고 찌질이 못난이로
살고 있는 꼴을 제 처한테 보여주는 정기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싶은 그런 덜 떨어진 걱정때문에 그랬지요.

그런데 정기가 그런 제 마음이라도 배려해서 그렇게 꾸몄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됐었는지는 모르지만 학교때 아주 친했던 여기 살고있는 친구가 여기와서 다른데 가서 자면 말이 되느냐고 화를 내면서 아예 비행장서부터 납치 하다시피 데리고 가서 시카고 구경하며 모든 걸 맡아 칙사대접을 해 주는 바람에 막상 저하고는 밖에서 만나 저녁 한끼만 마주 앉아 하고 말았다니까요.

머리가 백발인게 이젠 영락없이 나이먹은 걸 감출 수 없더라구요.

집에 무사히 잘 들어갔다고 어제 전화 왔었어요.

정기 하고는 추억이 여럿 있는 거 같아요.

정기하고 저하고 할머니 양손에 잡고 숲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걸어서 질퍽한 임진강 갯벌을 건너 이남으로 넘어 올때도 다리 아파서 더는 못간다고 떼를 써서 할머니 속을 썩혀드렸는데 ..

어머니도 생각나지요?
공주까지 피난 갔다가  서울이 수복됐다는 뉴스를 듣고 서둘러 떠나서 집으로 갈때에도 다리 아프다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버티곤 해서 저두 아직 어린 나이에  할 수없이 엄마하고 제가 번갈아 업어주며 달래서 서울까지 왔었지요.

그랬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그 애들이 어느새 둘다 백발이 되어 마주 앉았네요.

저는 정말이지 어머니 속을 무던히 썩혀드린 불량 아들이었습니다.
이제와서 때늦은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성적표에 모두 백점에 어쩌다가 90 점짜리만 하나 발견돼도 아버지한테 불려가 야단 맞던 그런 착실한 학생 이었잖아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어느때 부터인가 느닷없이 성적이 곤두박질해서 낙제를
간신히 면하게 됐던 건 그때 상세히 그 이유를 말슴 드릴 수 없었지만 저 나름대로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요.

그때 학교에서 이름 난 불량그룹이 있었는데
이 아이들이 저를 얼마나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는지 아세요?

툭하면 절더러 우동 사먹을 돈 내놔라, 담배를 사오라는 둥 견디다 못해서
그중에서 우두머리 되는 아이한테 한번 해보자고 도전장을 내고야 말았지요.

저도 무슨 정신으로 무슨 배짱으로 그랬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견디다 못해 아마 그랬던 거 같아요.
그 아이가 제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깔깔 웃더라고요.
말도 안되는 소릴 한다는 거지요.
좌우간 나가자고 해서

학교앞 싸움골목이라는 데로 둘이 가는데 그 아이들 그릅하고 구경꾼들이 수십명 이나 뒤쫓아 오더라구요.

저는 각오를 했어요.
선수를 써서 생각대로 안되면 그자리에서 죽도록 얻어 터지고 학교를 그만 둘 각오를 했어요.

저를 우숩게 본 그 아이는 전혀 방어를 안하고 방심하며 앞서 가는데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제가 그아이를 부르며 돌아보는 얼굴을 젖먹던 힘 다해서 처서 넘어트리고는 그위에 깔고 앉았더랬지요.
제 생각대로 된 거예요.

그 이후 그 아이들 그룹에 끼게돼서 그 후론 책과 담을 쌓게 됐던 겁니다.

딱 한가지 좋은 것은 그때부터 구찮게 구는 아이가 없어진 거예요.  

그렇게 시작한 게 어떻게 해서 명동 한복판에 까지 가게 되었고 그때 아버지가 작심을 하시고는 절 불러서 손을 끊던가 집과 연을 끊던가 택일하라는 바람에 제가 고개를 떨구고 아버지한테 항복하고 말았던 거지요.

그런데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보다 엄마의 기도 때문이었던 게 틀림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예요.

어머니의 기도는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저를 실 끝에 묶인 잠자리처럼 어느 선 이상으로는 탈선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게 나중에 확신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방안에 며칠이고 틀어박혀 나름대로 고민하고 기도하며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실현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었습니다.

그 일에 전념하기 위해선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그런 데서 행복을 찾는 건 포기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였지요.

어머니도 기억하시지요?

서른이 넘어도 여자친구 하나 사귀는 기색도 없고… 답답해지신 어머니가 아버지가 물어보라신다는 구실로 또 제방으로 들어오셔서 나가려는 절 불러 앉히시고 물으셨댔죠?  

” 도대체 어쩔 생각이고 아버지가 그러는데 혹시 몸에 무슨 말못할 고민거리라고 있는 게냐구?   아니면 가정을 꾸민다고 될 일이 안되란 법은 어디 있으며 오히려 곁에서 보필하면 더 잘될 것이 더 이치에 맞는 거 아니냐? “

그때 미국행 비행기에 탈 며칠 남기고 서둘러 수소문하시고 그렇게 급하게 짜 맞추듯   만나게 해 주셨던 그 처녀가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후의 제가 살아온 구석은 어머니도 이곳에 오셨을 때 이미 많이 보셨으니 자세한 말씀 다 안드려도 어느정도 짐작하시지요?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 사내가 눈물이 흔하면 못쓰는 게다.” 누누히 이르시고 했어서
저는 늘 그 말씀을 새기고 살아온 셈이지만  이 못난 아들은 한 여인으로 인하여
눈물샘이 마르고 또 몇번이나 마르도록   정말 원 없이 울고 또 울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울고 운전하면서 울고 이불쓰고 울고.. 그렇게 울었어요.
“어째 내 아들이 그런 못난이냐? “고 꾸짓지 않으셔도 돼요.
못난 걸 저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제가 얼마나 지질이 못나게 보였으면
저하고 결혼하기 위해서 천주교로 개종해서 교리공부하고 영세하고 혼배까지 했던 여자가 저더러 천주교를 떠나든가 자기를 놓아달라고까지 할 수 있을라구요?

어떻게 그런 여인의 청을 들어주자고 신앙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나요?

어머니도 그 점만큼은, 차라리  혼자된 제가 잘못했노라고는 안하시겠죠?

어머니.
지금도 아버지와는 함께 계시나요?

두 분의 영은 지금 어디쯤 계실가요?

성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무릎을 꿇어 십자가위에 계신 예수님께 두 영혼의 평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이미 하느님 품에 드셔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계시는지, 아니면 아직도 연옥에서 씻기움을 다 마치지 않으셨을지 안절부절 염려만 할 뿐 하느님만 아실 비밀이니 어디다 물을 수나 있나요.

세상에 어느 자손이 자기 부모를 큰죄인이라 생각 할라구요,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산당 피해서 다 버리고 맨몸으로 남한으로 피난하시고도 일곱이나 되는 저희들을 다 대학 보내  주시고 원하면 외국유학까지 다 보내주마 하시며  전쟁통에서 까지 저희를 호의호식 키워주신 것 말고는 흔히들 하는 말로 그야말로 언제 무슨 큰죄 지을 시간이나 있으셨을까 그런 마음입니다.

어머니.
카네이숀 대신 당신 영혼의 평안을 위하여 두 손 공손히 마주하고 우리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어머니.
부디 평안하세요 !

Happy Mother’s day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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