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연중 제 23 주일
한국에서 동갑내기 신부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오랫동안 투병했지만, 형제들의 기도 속에 하느님 나라로 돌아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마음이 찹찹했다. 같은 시간에 40대의 젊은 분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할 말이 없다. 참으로 우울한 요즈음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상상력은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위대한 능력이지만, 그 방향이 부정과 절망을 향할 때 영혼을 병들게 하는 우울함의 원인이 된다. 우울증은 상상력이 고갈되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시나리오를 그리는 데 상상력이 집중 될 때 찾아온다. 긍정의 스케치북이어야 할 마음에 절망과 흑역사만 그리다 보면 하느님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파수꾼으로서의 삶은 내 마음의 상상력을 하느님의 희망에 닻을 내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긍정적 사고는 단순한 멘탈 관리를 넘어, 우리 자신과 이웃을 구원하는 영적 파수꾼의 첫걸음이다.
오늘 1독서의 에제키엘서에서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너는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이라는 직함을 주신다. 쉽게 말해 공동체의 영적 안전 요원이다. 주변 사람이 위험한 길로 빠질 때 경보음을 울려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위험을 보고도 “에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입을 다물었다가 누군가 파멸하면, 놀랍게도 그 방관의 책임이 파수꾼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진심 어린 경고를 내보냈는데도 상대가 고집을 부리다 넘어진다면, 그건 본인의 몫이 된다. 하느님은 ‘결과’보다 위험을 방치하지 않는 ‘책임감’을 묻고 계신 것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형제적 권고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매너가 넘친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곧바로 공개 망신을 주지 말고, 먼저 1대1로 조용히 찾아가 타일러보라는 것이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신뢰할 만한 사람 한두 명을 동반하고, 그래도 안 되면 최종적으로 공동체의 지혜를 모으라고 하신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19) 용서하고 보류하는 권한은 기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만 올바르게 발휘될 수 있다. 사실 말은 쉽지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회개의 길로 이끄는 것은 인간의 의지만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라.” 하신다. 곧 혼자 애쓰다 지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마음을 모으라는 뜻이다. 미움의 마음을 기도로 풀어내고 화해의 장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파수꾼’으로 거듭나게 된다. 부정적인 절망의 상상력을 끄고, 서로를 보듬는 사랑의 상상력을 켤 때이다. 손절과 비난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아 주는 든든한 파수꾼이 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내야 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두 주일 전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다시 들려진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오는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맡긴 매고 푸는 권한을 우리 모두에게 확장시킨다. 교회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는 착한 목자의 표징이다. 교회 공동체는 잃어버린 이들의 회개와 귀향의 은총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
요즘 세상은 누군가 실수하면 즉시 ‘손절’하거나 ‘매장’하기 바쁘다. 남의 파멸을 구경하며 재미있어 하거나 신 나는 사람까지 있다.(정치하시는 분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공동체의 파수꾼이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못 본 척 지나치는 것은 파수꾼의 직무유기가 된다. 어색함과 거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의 손길을 끝까지 뻗어보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품격이다.
오늘 제2독서는 제자들이 이끌어 주어야 할 삶, 곧 예언자적 소명으로 제자들이 인도해 주어야 할 하느님의 길이 무엇인지 잘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지켜야 할 계명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리고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며, 율법의 완성이다. 제자들은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도록 불림을 받은 이들이고, 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악이다. 사랑하지 않으며 악을 저지르는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권고하여 다시금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우리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이 수행해야 할 예언자적 소명이다.
교회도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완덕의 여정에 있는 신앙인들이 완전할 수 없으므로 공동체에 아픔을 줄 수도 있다. 하느님의 파수꾼으로서, 하느님의 입으로서 이웃에게 형제적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서 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