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주님 부활 대 축일
오늘 부활 대축일 요한 복음사가는 우리를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안내한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다.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 무덤으로 가보니 무덤입구를 막았던 큰 돌이 치워져 있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즉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간다. 마리아로부터 빈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두 제자는 무덤으로 달려 갔지만,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이는 부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일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부활이란 마치 병아리가 알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것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돌을 치우는 것을 의미한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말한다.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시각은 온전히 그녀가 사랑했던 예수님을 향해 있다. 그분이 죽은 시체로든, 살아 있던 그가 사랑하던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머리 속은 오직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에 대한 큰 걱정과 상심뿐이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으로 향한다. ‘아직도 어두울 때’란 그녀가 아직 하느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어두움 속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빈 무덤을 향한 발걸음은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했지만, 그녀는 일단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기 위한 첫걸음을 떼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했다. 그분의 죽음과 부재에 대해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다. 황급히 마무리한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걱정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아직도 어두울 때’ 예수님 시신이나마 뵙고 싶어 무덤으로 달려간 것이다. 이런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노력은 예수님 부활에 대한 완전한 인식의 기초가 된다. 비록 부활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부족하고, 아직 예수님 신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그분을 향한 애틋하고 절절한 우리의 사랑이 있다면 우리 역시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의 신앙은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20,3) 지금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없어진 예수님의 시신이다. 상상도 못한 부활은 생각조차 할 염두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는 더 빨리 무덤에 도착하고 그와 베드로는 똑같이 무덤 속의 광경을 목격 한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은 깨닫지 못했지만, 복음은 사랑하는 제자는 ‘보고 믿었다’ 라고 한다. 그는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면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을 다른 곳에 잘 개켜 놓을 리 없다는 그 표징을 놓치지 않았다.
흔히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하고 싶고 싫음'을 따지기도 전에 그저 행동한다. 그는 예수님의 소리 뿐 아니라 예수님의 가슴을 듣는 귀를 가졌기에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표징을 통해 보고 믿을 수 있었다. 빈 무덤을 처음으로 발견한 마리아와 달려와 표징을 보고 믿게 된 제자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가슴을 들을 줄 알기에 ‘많이 사랑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
사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을 서술하지 않는다. 단순히 빈 무덤과 수의만 전한다. ‘빈 무덤’, 그것은 적어도 예수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 어떤 일인가가 벌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빈 무덤’은 ‘지나간’ 자리다. 죽음에서 삶으로 지나간, ‘파스카’의 자리다. ‘빈 무덤’은 혹 부활의 근거는 될지라도 부활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빈 무덤’은 제자들이 눈으로 직접 본 역사적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덤’이 죽은 이를 묻는 곳이라면, ‘빈 무덤’은 죽음 그 자체를 묻어버리는 것이다.
‘빈 무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없애 버린 빈자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이신 분을 넘어, 진정 예수님이신 구원자 그리스도가 되게 하는 빈자리다. 사실, ‘빈 무덤’, 그것은 당신의 본래의 자리인 동시에 우리의 본래의 자리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의 빈 무덤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빈 무덤은 “예수 그리스도 참으로 살아나셨다!”는 소리 없는 외침이며,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살아나셨다!”는 외침이다. 그 빈 무덤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그리고 이 세상 안에 살아나셨다는 외침이다. 해서 우리는 기쁘게 노래한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