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
저는 거울을 자주 들여다 봅니다.
전에는 바로 곁에, 안에 두고도 눈 여기지 않던 그 거울을 찾아내어
자주 보게됩니다.
아무리 자주 들여다 본대도 겉 모양의 그 모양이 달라질 일은 아닙니다.
그 거울은 내 겉모습의 매무새를 다듬는 일에 쓰이는 거울이 아니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에 멀리 떨어져 마음의 거울을 통하여 보았을 때의 그 모습은
그럭 저럭 보아줄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즈막에야 한발짝씩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 보는 내 모습은
정말 가관입니다.
더 바짝 가까이 가니 이건 정말이지 내자신이 봐도 눈뜨고 봐줄 수가 없네요.
흉칙합니다.
이리 저리 세파에 할키우고 색갈이 바래서 일그러진 것이야 그럴 것이다 쳐도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갈 뻔 했지요.
그동안 언제 어디서 그렇게 주어 모아 쌓아놨는지 세상의 못된 쓰레기로 깍 차서
빈 틈이 없어 보였어요.
그 것들을 목록으로 여기다 열거할 수도 없게스리 그렇게 많습니다.
부끄럽기 짝이없고 얼굴이 달아 오릅니다.
이제라도 하나씩 청소를하고 덜어내자면 다른 쓰레기가 빈틈을 노리기 전에 그 안에 모실 주님을 찾아 나서야만 할 것 같아요.
”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야경꾼을 만나면,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물어보리라. “(아가서 3)
( 편지 )
어디서 편지받을만한 데도 없어 편지함이 비어있을줄 뻔히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함을 열어보곤 한다.
E-MAIL 편지통 말이다.
지금은 이게 일반화돼서 누가 종이에다 써서 봉투에 넣는 사람도 없지만
전자우편이라는 그것, 참 멋대가리없고 삭막하다 싶다.
언젠가 Bright Star라는 아일랜드 영화를 보았는데 가난한 시인과 그 연인사이에
수도없이 주고받는 편지만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니라 봉투를 파는 상업용이 아니고 종이를 정성껏 접어 풀을 쑤어 부쳐서 보내며 받고 있는 그 모습들이 얼마나 눈물겹게
아름다운지 지금도 나는 그 영화 생각을 하게되면 절로 눈이 감기고 미소를 짓게된다.
부러워서 그러는데 촌스럽다고 말하지 말자.
얼마나 그 마음 씀씀이들이 예쁘고 또 이쁜가?
현대인들은 조급하고 그래서 빠른 것만 쫒는다.
끓인 물 부어서 후루륵 먹고 치우는 컵라면처럼 정성이없고 참말로 파이다.
” Hey, You. Are you also out of mind people? Get out then.”
오늘 나도 그 멋쟁이 시인 흉내낸다고 종이를 자르고 풀을 쑤었다.
그러데…….
그 시인이 나더러, ” 야! 너 때문에 스타일 싹 구겼다. “
그럴 것만 같애서 괜히 민망해져서 종이, 풀 모두 쓰레기 통으로 쏟아 넣고 말았다.
어차피 보낼데도 없었으면서 뭘 그래?
이럴 때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하지.
“오늘 너때문에 하루 죽 쒔네 그랴. ”
( 향기 )
투 베드룸에서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아무래도 불편하고 하루 이틀만 살고 말것도 아니고 효도도 좋지만 살림 따로 나자고 성화를 해서 신랑도 오늘은 눈 딱 감고 아버지한테 정식으로 건의서를 올리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놓고도 막상 앞에 가서는 말을 못하고 쭈빗대는 남편때문에 속상하고 인내에 한계를 느낀 며느리.
그렇다고 대놓고 대신 말할 수도 없어서 남편이 알아들으라고 노래를 한곡조 뽑았다.
” 에라이 썅, 에라이 썅. 애타는 호궁의 소리. 애타는 홍콩 아가씨…. “
“얘야, 아들아. 쟤 며늘아이가 시방 이 시아버지 들으라고 욕하는 건 아니겠지? “
“아이구, 욕이라뇨? 아닙니다.
저 에라이 썅은 욕이 아니라 야래향(夜來香)이라는 중국의 꽃을 노래한 것인데 그 꽃은 밤에만 향기를 낸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시도 때도없이 향기를 뿜으시는 분인데
그럴리가 있나요? “
” 지금 듣자하니까 너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너희 둘 다 이제 막나가자는 거냐, 뭐냐?”
그렇게해서 아버지 기분을 망쳐놓는 바람에 딴살림이고 뭐고 다 틀렸다는 얘기지만
뉘집 스토리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좋은 향기를 말하려던 게 예화를 잘못드는 바람에 이상하게 되었지만.
벌과 나비가 꽃향기를 따라 찾듯이 우리 신앙인들이 꼭 앞에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서서 어색한 표정으로 ” 에! 예수 믿으세요. “
그런 방식으로 선교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삶속에서 참신앙인의 본이되고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우리의 행실을 보고도 제발로 우리 성당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야래향처럼 밤에만 말고 우리도 시아버지처럼 시도 때도없이 향기를 내자.
단 시아버지같은 향기말고 좋은 신앙의 향기를.
언젠가 낮에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내가 우리 선교단들 틈에 껴서 함께 거리에 나서고 있었다.
용기가 안나서 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큰 맘먹고 말했다.
” 에, 여러분 예수 믿으세요.”
그러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날 가리키며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 얘. 나 저사람 자알 아는데 뭐 저렁게 다 있니?
나 사실 그전부터 성당을 찾아가고 싶었는데 저사람 보니까 저사람처럼 될까봐
겁나서 어디 그렇게 하겠니? 야. 우리 가서 너나 잘하세요. 그렇게 해줄까? “
낮에 꾸었으니 강아지 꿈이길 은근히 바라지만 실제 그런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실은 낮잠도 안자고 그런 꿈을 꾸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지난번에도 향기좋고 예쁜 꽃이 핀다는 화분을 성당에서 얻어와 한번 잘 키워보려고
큰 화분도 사고 흙도 갈아주었는데 꽃이 피기는 고사하고 벌써 죽을까 말까 하믈렛처럼 그걸 고민하고 있는지 초라한 모습으로 변했다.
좌우간 난 안된다니까.
어쩜 좋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