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월망지(見月望指) 그리고 생명의 음식
"견월망지(見月望指)"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로서 성철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스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을 닦기 위해 불경을 읽고 기도를 하라고 했더니, 제자는 마음 닦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불경만 읽는 제자들에게 일갈하셨습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 끝만 보고 있나?" 부처가 되는 방책으로 불경을 읽고 염불을 하라고 했더니, 부처의 길은 포기하고 엉뚱한 형식만 따르며 미몽에 빠진 사람에게 하신 호통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군중들을 만납니다.
지난주일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두 마리의 생선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그리고 이미 어두워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놀란 제자들이 그분을 배에 모시려고 하자 이미 배는 목적지 즉 건너편에 닿아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 말씀에 물위를 걸어오신 것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니까?”예수님의 대답은 어찌 보면 엉뚱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표징을 본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행위(기적)에서 신적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입니다. 즉 군중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빵의 기적이 아직 표징의 의미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오늘의 복음말씀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과 군중사이에 이어지는 대화는 거의 동문서답의 수준입니다. 예수님께서 달을 가리키고 계신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형국이지요.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의 주제는 바로 “먹는 것”과 “생명을 얻는 것”이 근본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요한복음에서는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약속된 “양식”입니다. 이 양식은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양식으로 이른바 “길이 남아있을 양식”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양식”이며 “사람의 아들이 주게 될 양식”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듣고 읽은 바대로, 이 양식은 구원의 선물로서 먹고 마시도록 제공될 예수님의 “살과 피” 곧 성체성사적 선물로서의 “음식과 음료”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는데 힘쓰지 말고 영원한 양식을 얻는데 힘써야 한다는 말씀에 사람들은 또다시 오해하며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들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금 이상한 말 같겠지만, 사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어찌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질문이 재미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겠느냐고 물었던 이들이 이제는 “당신은 무슨 일을 하겠냐?”고 반대로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렵니까?" 즉, 자기들이 생각하고 요구한 대로 신기한 일이 이루어져야만 믿겠다는 뜻이지요. 당신이 아무리 뭐라 해도 믿지 못하겠으니 뭐 좀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유대인들은 모세를 “해방자”, “구원자”로 여겼고 모세가 약속한 메시아적 예언자도 모세처럼 만나를 먹게 해주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빵은 만나보다 훨씬 뛰어난 빵이며, 실제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빵”임을 역설하시며 하느님의 빵을 설명하십니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만이”줄 수 있는 것이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은 “세상에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믿는 자 모두에게 생명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못하면서 대들듯이 말합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그 빵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계속해서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시되는 예수님의 인격보다 약속한 선물 (빵)을 먼저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느님의 빵”을 지상적 “기적의 빵” 즉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으로만 생각합니다.
결국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는 자들임을 스스로 밝힌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는 자들일까요? ‘고기 가마 곁에 앉아서 배불리 먹던 우리를 어찌하여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굶겨 죽이려고 하느냐? 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좀 더 쉽고 편하게 뭔가를 얻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 나갔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심과 비뚤어지게 발전할 수 있는 마음을 올바로 다스리지 못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노예생활이었어도 따뜻한 불가마 곁에 앉아 고기와 그 국물을 먹는 일이 편하고 좋은 것인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빵과 고기를 거저 얻어먹는 기적을 체험했다고 말하면서 같은 기적이 내 삶에서는 왜 안 일어나는지 예수님께 따지는 사람들이 옳은지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생명의 빵을 먹는 것과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성체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입니다. 달(참 기쁨)을 가리키고 계신 예수님을 따라 달을 봐야지 손가락(우리의 욕심과 허영)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