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암행어사 출두야!” 일반 백성으로 변장한 사람들이 육각모를 들고 여기저기서 뛰어나와 관청을 향합니다.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숨어있는 관리들을 잡아내고 거들먹거리던 사또를 잡아옵니다. 이런 광경을 백성들은 흥미롭게 바라보며 암행어사를 보낸 임금을 칭송합니다. TV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 흔히 보는 장면입니다. 사실 임금이 정직한 선비를 뽑아 직접 암행어사를 임명하고 백성들을 착취하고 부정을 일삼는 관리를 색출하고 벌을 주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암행어사들을 통해 임금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중의 왕이심을 경축하고,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온 세상이 그리스도 왕의 통치로 새롭게 되기를 기원하는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 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암행어사 출두야 하며 하느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이번 주일까지 3주에 걸쳐 들은 복음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이 준비한 기름은 하느님의 뜻에 따른 행실 곧 사랑의 실천이라 말씀드렸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하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밝혀 주어야할 사랑의 등불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첫째 종과 둘째 종은 달란트를 받고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받은 돈의 두 배로 벌어들이고, 그 종들은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종말론적인 축복을 받으며 더 이상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친구가 되어 축복 받게 됨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우리가 받은 달란트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결론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돌본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하며 예수님의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이 누구인지 말합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그리스도인은 앵무새처럼 입만 살아서는 안 되며," "마음과 손을 지니라" 하십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아기 예수님의 잉태 소식이 전해지는데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루카1,32-33) 또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메시아를 찾아와서는 헤로데 왕에게 “유다인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2,2) 하고 묻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엄청난 일을 체험한 백성들이 예수님을 강제로라도 왕으로 모시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6,15)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셨지만 이 세상의 왕들처럼 화려한 모습도 아니고 왕관도 없던 왕이셨습니다. 더럽고 누추하며 냄새나는 마굿간에 누우셨고, 화려한 금관 대신 조롱 섞인 가시관을 쓰셨고 웅장한 궁궐 대신 머리둘 곳조차 없던 분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세상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인기를 피해 다니시며 묵묵히 당신의 일을 하셨고, 당신 목숨을 바쳐 모두를 섬기셨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 28) 고 말씀하신 그대로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신앙의 해 폐막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는 창조와 백성과 역사의 중심이시다"고 상기시켜 주셨고, '교회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왕'이라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하시며 "우리가 그 길을 따라 살도록 끊임없이 이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제 "그리스도를 닮아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갖추는" (갈라 4,19 참조) 신앙인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왕 축일을 지내는 뜻이 아닐까요?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왕권을 기념하는 오늘,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게 된 우리게 복음은 묻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누구에게 또 어떻게 사랑을 드러내야 하는가?

 

세상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울 부강한 나라인 미국에 살기에 함께 있는 형제 중에 굶주린 이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마른 이도, 헐벗은 이도, 병든 이도, 감옥에 갇힌 이들도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사랑에 굶주린 이, 관심에 목마른 이, 나그네처럼 외로운 이, 마음이 헐벗어 냉랭한 이, 마음의 병으로 스스로 갇힌 이들은 내가 있는 여기에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나로부터 사랑에 굶주린 이, 나로부터 관심에 목마른 이, 나로부터……. 외로운 이, 냉랭 한 이, 갇힌 이,……. 너무 가까이 있기에 가슴이 시립니다.

몸으론 가까이 있지만, 가슴으론 이렇게 멀리 있었는지조차 생각지 못했던 바쁨이, 그러려니 했던 무관심이 복음의 비수가 되어 찔러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믿고 따르는 이들이 예수님이 모든이의 임금님이심을 증언하기 위해 세례를 받아 하느님 나라의 어사가 되어 파견된다고 하면 억지일까요?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를 어사로 파견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자 하십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세상의 부패와 맞서 우리가 외칠 "암행어사 출두요!"는 사랑의 실천이어야 하는데, 섬기러 오셨던 왕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의 섬김은 어딜 가야 볼 수 있을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 가장 작은이에게 해 준 것이 예수님께 해 드린 것이라 하시는데 "이 가장 작은이"는 어디에 있나요?

 

                                                                                                                                                                      – 김 두진(바오로)신부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