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쁜 소식의 비밀

기쁜 소식의 비밀

 

복음 (Evangelium: Gospel)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처음 낱말을 사용했습니다만 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것을 전하며


복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우리가 주일마다 읽고 있는 마르코 복음서 내용을 넓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까지도


복음의 대상 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마르코는 한걸음 나가 예수님께서 친히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합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오늘 복음의 서두 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관해 선포 하신 복음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관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부연 설명하자면, 예수님은 복음 선포하는 분이시기도 하고, 복음의 내용이 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


그리고 그분의 약과 그분에 관한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고 마르코는 선포하는데 바로 마르코는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선구자로 보았기 때문에 요한을 복음의 효시로 삼았습 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우리가 아는 대로 헤로데 영주는 세례자


요한을 잡아 사해 동쪽에 있는 마캐루스 요새에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요한이 활동을 마친 다음에 예수님을


활약하시기 시작했다고 오늘 복음 전합니다. 복음 서두에서 부터 요한의 섬뜩한 죽음을 연상시키 것은 예수님의 삶도


녹록치 않은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가 있으 십자가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죽었던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요한은 주로 유다지방


요르단강 유역에서 세례운동을 전개한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 겐네사렛 호수 주변에서 활약하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입니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회개와 믿음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등지는 것이 이고 죄를


사람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 회개입니다.  따라서 회개와 믿음은 이렇게 설명될 있습니다. 회개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라면 믿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다왔다 기쁜 소식을 수락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서서 기쁜 소식을 받아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도 그렇고 세례자 요한이 잡힌 복음을 선포하시 예수님의 삶도 우리네 범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들의 삶의


마무리는 좋은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했고,
예수님은 죄인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받는 십자가형에 처해 일생을 마감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전하는 복음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과연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설 있고 기쁜 소식을 받아드릴수

을까 하는 것입니다.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앙 삶이 도적적일수 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의 삶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향하게 되어있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소외되고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설파하

셨습니다. 소외된 이들, 죄인들, 병자들, 가난한 이들 그리고 결국 그런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범인들

눈으로 보기에 이렇게 팔자 거센 분의 말씀과 행위가 우리에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 있을까요? 돌아보면 우리 주변

에서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이들을 쉽게 찾아낼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들,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죄인 취급하며 무시하는 이들, 우리 주변에 마음의 고통을


당하는 이들과 몸이 아파 심적으로 육적으로 고통당하는 ,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위는 십자가로 요약됩니 . 아니 십자가를 향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외면


하면서 그분께 돌아설 없고, 그분께서 전하시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삶은 힘든


삶이셨지만 불행하지 않은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아드려 살아내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힘겹고


버거운 순간에 맞닥드려 고통스러울 수는 있겠으나, 믿음 안에서 구원을 살기에 보람 안에서 불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께서 힘차게 당신의 왕도를 펼치실 때가 다가왔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느님 나라의 특징을 보면,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의 구원론적 성격을 강조하셨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설파하신 하느님은 인간의 멸망이 니라 구원을 바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구원을 더욱더 열망하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소외 받은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느님의 나라 직역하여 하느님의 왕정 하느님의 통치입니다. 임금님으로서 역동적으로 올바른 선정을 베푸시는


하느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해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다가오셨다 것이고,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로 간다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회개한다는 것은 등지고 살았던 하느님께 돌아서


하느님의 품에서 산다는 것이며, 기쁜 소식을 받아들 인다는 것은 이웃들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행적을


찾아내는 것이고 십자가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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