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명을 어긴 아담이 죽기를 바라셨기 보다는 참화하여 돌아 오기를 원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때 사순시기를 맞으면 모두 죄인의 모습으로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며 속죄 예식을 통해 부활하실 주님께 돌아 갈 준비를 하였을까 합니다.
우리도 이마에 재를 받으며 참화와 속죄의 40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절제도 참회하는 그 방법중에 하나가 되겠지만 그 안에 진정으로 속죄하는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면 참 뜻없는 절차에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고 요엘 예언서가 지적하고 있는것이 아닐지요. 지난번에 어떤 시사 주간지는 벌린 입을 닫을수 없을 만큼의 끔찍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400개 이상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는데 거기서 만들어 내는 우라늄 이나 이산화탄소는 당장에라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수백번 전멸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양 이라고 합니다.
그 뿐 이겠습니까?
인공조미료와 인공사료로 키운 동물고기를 사다 먹어야 하는 우리들은 모두 불치의 공포스런 병을 예약하고 살고 있는 셈 아니겠습니까?
전에 잠시 석면제거 사업에 관계하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미국이나 한국의 조금 오래된 건물 안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은 모두 발암물질을 마시며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부모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어른들이 돈 벌자고 한 짓 입니다.
정부당국들은 이제 이것을 다 헐자니 막대한 자금과 또 부작용을 두려워하고 있지 뭡니까? 걱정은 거기서 멈추게 하나요?
미국의 엄마들은 얼굴과 이름만 아직 없을 뿐인 그러나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인 뱃속의 생명을 해마다 백만명 이상씩 이나 무참히 살인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도 안하며 웃으며 살고 있지요.
며칠전에 견딜수 없는 일부 카톨릭 교우들이 워싱톤에 모여 중지하라고 웨쳐댔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귀 담아 들었을지요.
이런 고발기사를 여기 실는 저는 정의로워서 거룩해서 말 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말은 하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저나 어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재를 뒤집어 쓰며 참회해야 할 죄인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를 또 지어야 할찌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오늘의 노아의 방주는 어떤 모습일까요.
나무에 역청을 발라 지은 나무배 일까요?
회개와 속죄의 마음을 담은 의로운 삶의 모습 일까요?
엄두도 못할 그런 큰일은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실행할수 있는 생활속의 작은 일이라도 다 함께 이 사순시기에 이루면 어떨까요.
( RICE BOWL )행사를 통한 우리의 절제와 희생의 결과는 도움을 받아야 할 우리의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겨자씨 같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사업에 동참하는 교회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여 부활하시는 주님을 기쁘게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