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또,
새로운 디지털 기술 신상품이 소개될 만큼 마치 극을 향하여 줄달음치는듯이 발전하고 있어 보이는
인간의 능력들은 정말 그 끝이 어딜지 짐작이 어려울만큼인 것만 같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흙을 빚어 사람을 지으셨을 때,
”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들자.” 고 하셨기 때문일까요?
대체 어디서 그렇게 쏟아 나오는 것일까요.
저 처럼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기 까지 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그 신제품을 만들어 낸 그 기술들을 더듬어 이해하려는 것은 커녕 누가 그냥 쓰라고 준대도 그걸 사용하기 위해
익혀야 할 Instruction 을 읽으며 하나하나 더듬는 그 자체에서 이미 질려서 지레 포기해야 할 지경이니까요.
언젠가 딸아이가 집에서 쓰기 편리해 보이니 쓰라고 가전제품 하나 사주었는데 사용법을 익히다가 그만 써 보기도 전에 왕짜증이 나서,
혼자 소릴 지를 뻔 했었지요.
” Hey, leave me alone, OK? ” 아무도 듣는 사람이 곁에 없어 다행이긴 했지만…
오늘은 다른 그 많은 상품들은 일단 제껴놓고
이젠 아예 흔해빠진 스마트폰의 텍스트에 관해서 꼭 잔소리 한마디 해야만 할 거 같아요.
Text on the phone.
이거 정말이지 어떻게 좀 해야될 것 같아요.
그 편리함에 비해서 그 기능 때문에 그 뒤에 숨은 문제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시간에 어딜 가나 젊은이들은 고갤 숙이고 문자찍기에 거의 제정신들이 아닙니다.
좀 뭣한 말로 제가 보기엔 어쩌면 이 기술은 사탄의 앞잡이가 만든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왜 ?
그렇게 생각하냐구요?
생각해 보십시오.
이 지구상의 어느나라를 가나 젊은이들의 90% 이상은 이미 스마트폰에 사로잡혀 그 노예가 되어있습니다.
잠들었을 때만 빼고는 아마 거의 거기에 매달려 하루 해를 보내는 게 아닌가요?
집에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또 다른 가족들과도 대화가 사라졌지 않나 싶습니다.
도무지 관심조차 없어 보이지요.
그런데 다른 거 다 말고라도,
운전중에 찍어대는 일만큼은 정말 봐 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언젠가 제 딸아이하고 어디를 꼭 같이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 아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었는데
빨간신호등만 나오면 그 잠간 사이에 꺼내서 찍어대는 거 아닌가요?
자식이라도 이젠 과년하니 그전처럼 잔소리하기도 쉽지 않아서 자꾸 곁눈으로 싫어하는 눈치를 주는데도
여전히 찍어대는 겁니다.
참다못해 운전중에 그것 좀 그만둘 수 없냐고 짜증을 냈더니 중요한 대화이니 좀 참고 이해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만 참아주어야 하는데 ” 중요하다는 게 너와 아빠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겠냐?
너는 지금 두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고 운전하고 있다는 걸 명심해. 나는 택시나 뻐스 타고 갈테니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여기서 차를 세워 날 내려 줘.”
그렇게 역정을 내고서야 그 아이가 멈췄습니다.
물론 그 아이가 싫어했겠지요. 가는 동안 분위기도 어색했었고요.
그런데 이 문젠 그냥 잔소리로 들어서 될 일은 아닐 것 입니다.
병원응급실에 가 본다면 제 말씀을 이해하실지 모릅니다.
문자찍다가 사고로 실려오고 불구자가 되거나 죽기까지 하는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자기 자신만 다치나요? 다른 차를 받아 거기 사람들 까지 애꿎은 생명을 해치게 되지요.
아무리 급하고 중한 문자라도 운전 한 30분, 한시간 쯤 참았다 할 수 없을지경이면 잠시 세워놓고 해도 되겠지요?
중요하다는 게
다 괜히 하는 구실 같아요. 그냥 중독처럼 돼서 습관으로 그렇게들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귀한 자녀들 타주에서 학교 다니거나 직장생활들 하죠?
아니면 집에서 같이 살아도 아침엔 나가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아마 계속 찍고 있을 거예요.
아주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서라도 멈추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 귀한 생명이 달린 일이니까요.
” Oh, please! Stop it ! I am begging you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