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파 한 까까머리 중학생 둘이서 동대문쪽을 향하여 걷고 있었습니다.
집은 남대문 쪽이고 학교도 그와 반대편인데 왜 엉뚱한 곳을 배회하고 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것 같습니다.
공부는 제껴 논 그룹의 멤버들인 모양 이니까요.
상점에서는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
마침 그 거리 종로 5가 쯤에는 각종 씨앗을 파는 종묘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가 장난기가 동 했습니다.
다른 하나의 등을 툭 치며 따라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는 한 종묘상으로 들어갔습니다.
” 어이, 학생. 꽃씨라도 사러 왔나? “
” 아저씨, 씨앗 하나만 주세요. “
” 글쎄 어떤 씨앗을..? “
” 눈물의 씨앗이요. “
” 지금 한참 바쁜 시간인데, 이 녀석들이… “
쫒겨난 두 녀석중 뒤따라 들어왔던 그 아이는 후일에 종묘상 주인의 사위가 된 기이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러고 돌아다니던 두 까까머리들의 학교성적은,
” 어떠했겠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큰 실례라고 말하겠어요. “
* * *
(사랑)은 과연 (눈물의 씨앗) 일까 생각합니다.
남녀의 사랑도, 부모의 자식 사랑도 거저 얻어지는것이 아니니까요.
헌신적이고도 값 비싼 희생을 딛고 그 위에 사랑의 싻이 돋는것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담보로 했을라구요.
”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서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고 시인도 말 했었지요.
그런데 이 세상 어느 누구의 순애보적인 사랑인들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람을 향한 그 사랑에 버금 가느것이 있겠습니까.
로마의 병정이 그분의 손에 못을 박고 망치로 내려 칠 때면 머리속에서 폭탄이 터지는것 같은 고통을 느끼셨다지요.
죄도 없는 그 이가 왜 나로 인하여 그런 아픔을 받아야만 하셨나요?
어디 그 고통만으로 끝 이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배신하고 또 등 돌리고 끊임없이 그분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아 드리는데도 그래도 아직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는 나의 주님.
사순절을 지내며 나는 무엇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회개하고 절제하는 삶을 꾸며 다만 조금만이라도 덜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날 그때에 그분을 뵈올 수 있으련가?